2017.5.13. 부활 제4주간 토요일                                                                                   사도13,44-52 요한14,7-14



나는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일치의 중심인 예수님-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 삶의 중심, 우리 공동체의 중심입니다. 우리 베네딕도 수도회의 영성 역시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영성’이라 합니다. 비단 베네딕도 수도공동체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이들 역시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산다고 공동체가 아니라 ‘일치의 중심’이 있어야 비로소 공동체라 할 수 있고, 우리 믿는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을 일치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서로 좋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향’이, ‘일치의 중심’이 같기에 삽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바라보기에, 일치의 중심에 두고 있기에 삽니다. 제가 여기 ‘주님의 집’인 요셉수도공동체에 살기 시작한 지 올해로 30년째(1988-2017)입니다. 흔히 수도공동체를 수도가정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아마 이보다 더 긴밀한 가정공동체도 없을 것입니다. 몇일, 몇 년도 아니고 수십년 평생을 함께 기도하고, 먹고, 일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떠오른 질문은 ‘나는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세례받아 주님과 함께 살게 된 모든 이들이 끊임없이 자문해야 할 물음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의 필립보의 예수님과의 대화가 좋은 묵상감입니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요한14,7)


예수님을 아는 것이 바로 아버지를 아는 것이고, 예수님을 뵙는 것이 곧 아버지를 뵙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필립보는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알았다면 다음과 같은 요청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족하겠습니다.”요한14,8).


어찌보면 필립보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지만 예수님을 잘 모름으로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빌립보가 예수님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를 알 수 있기에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는 청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우리 모두에 대한 질책같이 들립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하느냐?”(요한14,9).


주님의 집에서 주님과 함께 살기로 하면 제가 필립보보다 비교할 수 없이 오래 살았습니다. 그러나 과연 나는 얼마나 파스카의 예수님을 알고 있는가? 자성自省하게 됩니다. 세례받은 모든 분들 자성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도 남남으로 무관無關하게, 상관相關없이 살아가는 분들도 있고, 날로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 믿음의 관계로 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나는 어느 쪽에 속합니까?


예수님에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아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과 앎은, 믿음은 함께 갑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할수록 예수님을 알게 되고 신뢰의 믿음도 깊어갑니다. 흔히 교회의 공동전례기도시간을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시간이라 합니다. 


평생 매일 규칙적으로 공동시편전례기도를 통해, 매일공동미사를 통해 살아계신 파스카의 예수님을 만난다면 날로 깊어지는 예수님과의 관계여야 할 것입니다. 날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절로 아버지와의 일치도 이루어 질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도 의미심장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요한14,12).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때 예수님을 알게 되고 저절로 믿게 됩니다. 사랑-앎-믿음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다 함은 예수님과의 깊은 내적일치를 뜻합니다.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주어지는 하느님 아버지의 권능이기에 예수님의 일을, 아니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퍽이나 고무적인 말씀입니다. 


사실 다 다른 공동체내의 형제들도 진정 예수님을 사랑하여 믿음이 깊어갈 때 이심전심 공동체의 일치와 형제애도 날로 깊어져 갈 것입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이듯 예수님과 제자들인 우리도 하나입니다. 예수님과의 일치가 깊어져 가면서 저절로 아버지와의 일치도 깊어져 우리 또한 아버지와 하나될 수 있으니 바로 이런 관계가 내적 힘의 원천이 됩니다. 


바로 오늘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주님과의 일치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니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가 더 큰 일도 하는 모습입니다. 이들 제자의 담대함은 바로 주님과의 깊은 일치의 반영입니다. 예수님을 환대했던 유다인들은 곧 돌변하여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하여 다음 예언말씀대로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복음이 선포됩니다.


“땅끝까지 구원은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사도13,47ㄴ).

다른 민족 사람들은 사도들로부터 주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며 주님을 말씀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날 때 넘치는 기쁨과 평화입니다. 시기심으로 가득 찬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내쫓았지만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참 재미난 비교입니다.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반면,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말입니다. 바로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과 깊은 일치의 반영입니다. 정말 나는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예수님을 얼마나 믿고 있습니까? 날로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 앎의 관계, 믿음의 관계입니까? 파스카의 예수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과의 관계를 깊게 하시고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채워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하시도록 하겠다.”(요한14,14).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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