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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18.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여호24,1-13 마태19,3-12

 

 

하느님 중심의 교회 공동체

-전례; 우정의 여정-

 

 

“주님은 어지시다 찬양들 하라.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시편136,1)

 

화답송 시편 136장이 잔잔한 위로를 줍니다. 국민 모두가 공부하고 각성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공부하는 마음, 배우는 마음으로 날마다 강론을 씁니다. 참으로 공부해야할 것이 많습니다. 물론 공부와 더불어 기도는 필수입니다. 얼마전 보는 눈, 관(觀)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나눴습니다. 공부의 목적도 이런 보는 눈, 올바른 관점(觀點)을 지니는 데 있음을 봅니다. 특히 올바른 공동체관, 교육관, 결혼관의 교육과 공부는 너무 절실합니다. 이런 교육과 공부가 전무하기에 겪는 혼란과 낭비가 너무 큽니다.

 

오늘 복음은 혼인과 이혼, 혼인과 독신에 관한 내용입니다. 가톨릭교회의 결혼관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창세기를 근거로 혼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바리사이들의 당신을 시험하기 위한 이혼에 대한 불순한 질문에 개의치 않고 올바로 답변하십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간음으로 인해 부득이 이혼을 허락한다 할지라도 교회의 결혼관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어 독신의 경우는 타고난 고자, 사람들이 만든 고자, 하늘 나라 때문에 자발적으로 결혼하지 않는 고자의 경우를 들면서 예외적인 독신도 인정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이나 바오로,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사제와 수도자, 동정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과연 나는 어느 상태에 있습니까? 결혼했다면 결혼관에, 하늘 나라를 위한 독신이라면 그 생활관에, 또 독신이라면 역시 그 인생관에 투철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어떻게 참으로 인간의 존엄한 품위를 유지하면서 살 것인지 고민하고 공부와 자기훈련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결혼은, 사랑은, 부모는 아무나 하나? 결혼도, 부모도 자격시험을 봤으면 좋겠다!”

 

오늘날의 무책임한, 무자격자 부부들의 빈번한 이혼을 보며, 자녀 교육의 부실함을 보며 저절로 탄식처럼 나온 말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십계명 아홉 번째는 남성이라면 깊이 명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9.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여자의 경우는 "남의 남편을 탐내지 마라."가 되겠습니다. 불륜으로 인한 부부공동체를 깨는 행위가 얼마나 큰 죄악인지 깨닫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지속적인 불륜은 절대 있어선 안될 것입니다. 부부간 무너진 신뢰와 사랑의 상처의 회복이 너무 요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신뢰와 사랑에 바탕한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 삶에 철저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서로 마주보며 사는 부부공동체가, 수도공동체가 아니라 공동체의 중심인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평생 우정의 여정에 항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맞지 않아 이혼할 경우도 있겠습니다. 아주 오래전 부제반때 교회법 교수신부님이 로마에서의 혼인법 마지막 수업시간 스승 신부님이 결론처럼 들려 주셨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교회법을 총동원해서 살 사람은 살게 해주고, 못 살 사람은 헤어지게 해주라.”

 

말그대로 복음적인 해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상한 경우이고 서로간 관계를 위한 노력은 평생동안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부공동체의 일치도, 수도공동체의 일치도 평생 공동체의 중심인 주님과, 또 함께 사는 이들과의 “우정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우정의 여정을 풍자하는 재미난 예화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납니다.

 

“십대 부부는 꿈속에 살고, 이십대 부부는 신나게 살고, 삼십대 부부는 사랑하며 살고, 사십대 부부는 싸우며 살고, 오십대 부부는 미워하며 살고, 육십대 부부는 불쌍해서 살고, 칠십대 부부는 고마워서 산다.”

 

연인의 연정(戀情)에서 친구의 우정(友情)에 이르는 기나긴 사랑의 성장 여정을 보여줍니다. 저는 그래서 부부는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救援)이요 성인(聖人)이라 격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정말 남남의 부부가 평생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있는 순교요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지극한 인내의 기다림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며 살다보면 깨달음의 은총과 더불어 연민과 감사의 성숙한 우정에 도달할 것입니다. 

 

수도공동체 생활 42년째 70대 중반인 저를 포함해 두 수도형제도 이런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참으로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어느 사이좋은 부부의 일화도 생각납니다. ME부부 단체 피정시 지도 신부님이 ‘죽은 다음 다시 태어나 지금 배우자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 보라’ 했을 때 가만히 눈떠보니 자기 부부뿐이었다는 일화입니다. 정말 이런 부부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할 것입니다.

 

결혼하면 칼릴 지브란의 잠언이 생각납니다. 비단 결혼한 부부만이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하는 모든 형제자매들이 귀기울여 경청하고 묵상할 지혜입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니

 영원히 함께 하리라

 죽음의 날개가 그대들의 삶을 흩어놓을 때에도

 그대들은 함께 하리라

 아니 신의 고요한 기억 속에서 까지도 함께 하리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리하여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그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그보다 그대들 영혼과 영혼의 두 기슭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하나의 잔으로

 함께 마시지는 마라

 서로에게 제 빵을 주되 같은 조각으로 먹지는 마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따로 있게 하라

 비록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마음 속에 묶어 두지는 마라

 오직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담아 낼 수 있으니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라

 사원의 기둥들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것처럼

 참나무와 편백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참으로 공동생활에 깊은 통찰과 깨달음의 지혜를 주는 잠언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여호수아서는 내일이면 끝납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호수아가 대업을 이룬후 열두 지파 연맹의 성읍이며 성소인 스켐 전례 집회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회고하는 연설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 믿는 이들의 공동체 형성에 전례은총이 얼마나 큰 지 깨닫습니다. 

 

새삼 주님의 이 거룩한 공동 미사전례 은총이 결혼 부부 공동체든 수도공동체든 공히 반듯한 공동체 일치의 형성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지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한결같이 거행되는 공동미사전례의 은총이 주님은 물론 서로간의 “우정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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