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9.성령 강림 대축일                                          사도2,1-11 1코린12,3ㄷ-7.12-13 요한20,19-23

 

 

우리의 희망(希望)이자 영약(靈藥)인 성령 

“무지에 대한 답은 성령뿐이다”

 

 

“알렐루야, 주의 얼이 우주에 충만했으니 어서 와 조배드리세.”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 아침기도 초대송 후렴과 이어지는 찬미가를 부르며 저절로 나온 탄성입니다. “참 아름답다!” 전례의 아름다움은 가톨릭교회의 아름다움이며 하느님의 아름다움입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합니다. 토스트에프스키 백치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그러니 성령에 따라 사는 성령의 사람이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아침 독서도 첫 구절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로마8,5-6)

 

사람은 본능적으로 희망을 찾습니다. 길을 찾습니다. 빛을 찾습니다. 희망의 길, 희망의 빛입니다. 희망의 빛을 찾아 새벽 강론 쓰기전 세상 소식을 대략 일별해 보기위해 인터넷을 검색해보나 대부분 어두운 소식들입니다. 지극한 인내를 요구합니다. 교황님의 홈페이지 뉴스를 보며 희망을 발견합니다. 어제는 교황님이 이태리의 베로나 도시를 방문하여 말씀하신 여러 내용들의 제목이 신선했습니다. 

 

“여러분의 친구인 예수님과 함께 파도를 거슬러 앞으로 나가십시오.”

베로나의 어린이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미래는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손에 달려있습니다.”

베로나 시민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그리고 타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눕시다.”

베로나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고백성사가 고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십시오.”

베로나의 사제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결론하여 분명한 사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령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온전한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성령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단 하나의 소원을 말하라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저는 두말할 것 없이 성령을, 성령충만한 삶을 청하겠습니다.

 

무지와 허무, 무의미에 대한 답도 성령뿐입니다. 사랑의 성령, 생명의 성령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우리의 궁극의 목마름을,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고자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참 좋은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선물을 받고자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은 얼마나 흥겨웠는지요!

 

“하느님, 당신 얼을 보내시고, 누리의 모습을 새롭게 하소서”

 

이어지는 성령강림 부속가 기도는 얼마나 좋았는지요! 앞부분만 잠시 인용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당신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없는 이의 아버지, 은혜를 주시는 이, 마음들의 빛이여.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흐뭇한 안식이여”

 

참 좋은 성령입니다. 참으로 성령에 목마른, 성령에 배고픈 우리들입니다. 도저히 성령이 아니곤 해결될 수 없는 목마름, 배고픔입니다. 참으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온전한 사람입니다. 주목할 것은 공동체에 주시는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인 듯 하나 공동체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둘의 독서와 복음을 보세요. 모두가 공동체를 배경으로 합니다. 누가 성령의 사람입니까? 

 

첫째, “소통과 일치의 사람”입니다.

오순절이 되어 사도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을 때 성령 강림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며, 불꽃 모양으로 각 사람 위에 내려 앉습니다. 실감나게 묘사되는 성령강림입니다. 놀라운 것은 불통의 공동체가 소통과 더불어 일치의 공동체로 변모한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바벨탑 사건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이들이 마침내 모여 일치의 공동체로 변모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은가?”

 

만민의 공통보편언어가 성령입니다. 이래서 공동체가 중요한 행사나 회의때에는 “오소서 성령이여” 성가 142장이나 494장을 부르기도합니다. 공동체가 바치는 참 좋은 기도입니다. 오늘 시간되시면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비상한 성령강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을 잘 아시는 주님은 참으로 겸손한 이들에게 끊임없이 성령을 선물하시어 불통과 분열의 공동체를 소통과 일치의 공동체로 바꿔주십니다. 성령의 사람은 분열의 사람이 아니라 소통과 일치의 사람입니다.

 

둘째, “은사의 공동선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고백할 수 있는 것도 성령의 은사입니다. 공동체에 속한 각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은사는 여럿이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요, 직분은 여럿이지만 같은 주님이요, 활동은 여럿이지만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셨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우리에게는 큰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요 모두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는 공동체를, 공동선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공동체 형제들을 위해 쓰라 선물로 받은 은사임을 깨닫는 다면, 자랑이 아니라 감사할 것이요 교만은 커녕 저절로 겸손해 질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사람은 은사와 공동선의 사람이자 동시에 감사와 겸손의 사람입니다. 감사와 겸손은 함께 갑니다.

 

셋째, “평화와 기쁨의 사람”입니다.

파스카 주님이, 주님의 성령이 임할 때 두려움의 벽은 평화의 문으로 바뀝니다. “벽이 변하여 문으로!” 제가 참 좋아하는 말마디입니다. 복음을 보십시오.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을 때, 예수님은 공동체 가운데 오시어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주님이 함께할 때 두려움의 벽은 평화의 문으로 바뀝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합니다. 평화의 선물과 더불어 기쁨의 선물입니다. 세상에 이런 주님의 평화와 기쁨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빼앗아 갈수도 뻬앗아 올수도 없는 평화와 기쁨이요 이는 순전히 주님의 선물, 성령의 선물입니다. 참으로 성령의 사람은 평화와 기쁨의 사람입니다.

 

넷째, “파견과 용서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파견과 용서의 사람입니다. 파견과 선교는 교회의 존재이유입니다. 주님의 평화의 선물과 더불어 동시에 파견하시며, 또 성령도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남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성구 앞절(요한20,21)은 반갑게도 어제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을 맞이한 빠코미오 원장 수사의 서품상본의 성구입니다. 공동체 울타리 안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되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부단히 평화와 용서의 사도로 파견되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선물이요 과제입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아 성령의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 평생과제입니다. 이래야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온전한 참나의 실현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1.‘소통과 일치의 사람’입니다. 

2.‘은사의 공동선의 사람’입니다. 

3.‘평화의 기쁨의 사람’입니다. 

4.‘파견과 용서의 사람’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성령의 사람, 주님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오소서, 성령님. 

 믿는 우리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고,

 우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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