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3.금요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사도25,13ㄴ-21 요한21,15-19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묘비명墓碑銘-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

 

 당신 구원, 그 기쁨을 내게 도로 주시고,

 정성된 마음을 도로 굳혀 주소서.”(시편51,12.14)

 

아침 시편성무일도시 새삼 마음에 와닿은 구절입니다. 요즘 들어 죽음에 대해 자주 묵상하곤 합니다. 주변에서 세상 떠난 소식들을 자주 듣게 되며 20년 사이 참 많은 분들이 돌아갔습니다. 앞으로 살 햇수가 대략 예상되곤 합니다. 그래서 사막교부들은 물론 성 베네딕도 역시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말씀을 남겼고,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경구警句도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늘 죽음을 생각한다면 모든 환상이나 거품은 걷히고 깨어 오늘 지금 여기서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세 예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1.“제 가까운 부모나 오빠들이 거의 85세 전후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렇다면 저도 5년뿐이 안남았어요.” 거의 50년 이상 알게 된 가까운 어느 자매의 고백입니다. 이런 자각이 늘 깨어 오늘 지금 여기를 살게 하리라 봅니다.

 

2.매해 시어머니 연미사를 봉헌하는 한 자매가 생각납니다. 수도원 초창기부터 30년 이상 수도원과 관계를 맺고 있는 분으로 특히 제가 거의 10년 이상 매달 강론집을 보내드리는 자매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또 틈틈이 매일 강론을 읽는다 합니다. 또 남편이 잠깨기 전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 분으로 남편은 “나는 수녀하고 산다”라고 자기를 자랑스럽게 남들에게 소개한다 했습니다. 이분이 얼마나 힘든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는지 세상을 떠날 때에는 “정말 고맙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선종하였다 합니다. 

 

바로 이 자매가 예상치 않았는데 어제 집무실에 좋은 의자를 선물했습니다. 먼저도 선물했는데 고장난 것을 안 자매가 재차 큰 아들을 통해 그 무겁고 튼튼하고 편안한 의자를 선물했습니다. 원래의 소박한 나무의자가 좋았는데 고마운 마음에 즉시 교체했습니다.

 

3.삼십년 이상 수도원을 자주 찾아 피정하는 분으로 지금 60이 되도록 독신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참으로 하느님만을 찾는 순수한 자매인데, 작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전 약 5년은 잡다한 세상 모든 관계를 끊고 작년 92세로 곱게 선종하기 까지 오직 어머니만을 섬기며 살았다 합니다. 목욕을 시켜드릴 때 마다 어렸을 때 자기를 목욕시킨 어머니를 생각했다 합니다. 

 

세상을 떠나기전 바로 전날 죽음을 예견했던지 자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 예뻐라!”, “아, 불쌍해라!” 두 말씀을 남겼는데 유언이 되고 말았다며 눈물을 지었습니다. 그대로 어머니를 통한 주님 말씀처럼 들렸고, 자매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 고백했습니다.

 

그 누구도 세월을, 죽음을 비켜갈 수 없습니다. 본질적 깊이의 맑고 순수한,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는 죽음에 대한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도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오로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 거리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복음은 사도 베드로의 순교후 쓴 사후예언으로 요한복음 사가도 이 복음을 쓰면서 베드로의 순교의 죽음을 생각했음이 분명합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부활하여 발현한 주님은 세 번 자기를 배반했던 수제자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을 확인합니다. 사랑한다 고백할 때 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는 말씀의 당부를 하십니다. 날 사랑한다면 날 사랑하듯이 그대로 내 양들인 형제자매들을 돌보라는 말씀에 이어, “나를 따라라!”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베드로가 이후 사전에 묘비명을 정했다면 필시 이 두 말씀이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의 사전 묘비명으로 정해도 본질적 깊이의 사랑의 삶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다음 두 사전 묘비명을 통해 늘 주님 사랑을 새로이 했을 사도 베드로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따라라!”

 

다음은 바오로 사도입니다. 부활시기 제1독서 사도행전도 내일이면 끝나며 그 주인공은 단연 사도 바오로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교회의 양대 기둥인 베드로와 바오로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독서는 로마로 압송되어 순교하기까지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 거르는 느낌이 드는 참 지루한 마지막 사도의 삶의 여정입니다. 어제는 최고의회에 출두하여 자기의 소신을 설파했고, 오늘은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장면입니다. 

 

이런 죽음이 예견되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영원한 사랑과 신뢰, 희망을 두었기에 시종여일 한결같았던 바오로임을 깨닫게 됩니다. 과연 바오로의 사전 묘비명은, 또 좌우명이 있다면 무엇일까 상상해 봤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9,5)

 

바오로가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회심의 결정적 계기가 된 이 말씀이 바오로의 사전 묘비명이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이 말씀을 회상할 때 마다 심기일전, 분발하여 주님 사랑을 새롭게 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바오로 사도의 유언과 같은 다음 말씀을 사도는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리 길을 다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4,7)

 

이 말씀은 제가 늘 좌우명처럼 마음에 지니고 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베드로와 바오로, 영원히 빛나는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戰士로 살다가 순교의 죽음으로 전사戰死한 위대한 사도들입니다. 

 

6월 예수성심성월의 엊그제 첫날은 순교자 유스티노 기념일이었고, 어제는 마르첼리노와 베드로(+303) 순교자에 이어, 오늘은 1886-1887년 사이 순교한 아프리카의 첫 순교자들인 우간다의 스물 두분의 순교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이들 순교자들 대부분이 세례 받은지 얼마 안되는 분들인데 무왕가 폭군의 박해로 가롤로 르왕가를 포함해 22분이 잔인한 화형으로 순교의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마침내 이들은 1964년 10월18일 로마에서 교황 성 바오로 6세에 의해 우간다의 순교자들로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란 말이, 또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순교자들을 통해 찬연히 빛나는 예수성심의 사랑이 우리 모두 순교적 삶에 항구할 힘을 주니,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마라나타! 

오소서, 주 예수님!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희망이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신망애信望愛가 되게 하소서.

당신만이 제 삶의 전부가 되게 하소서.”

 

오늘도 “오소서, 주 예수님” 호흡에 맞춰 끊임없이 기도바치며 주님으로 충만한 행복한 하루를 사시기 바랍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받을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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