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5. 월요일 사부 성 베네딕도의 제자 성 마오로와 쁠라치도 기념일                       사무상15,16-23 마르2,18-22



비우고 비워 하늘이 되고 싶다

-사랑, 지혜, 기쁨-



환상幻像과 허욕虛慾이 말끔히 걷힌 투명한 겨울 풍경이 좋습니다. 텅 빈 사막을 사랑했던 옛 수도자들의 심정도 이러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지혜와 사랑과 기쁨도 이런 텅 빈 마음의 사막에서 나왔음을 봅니다. 어제 수도원 빈 들, 빈 길을 걸으며 떠오른 글입니다.


-텅 빈/겨울이 좋다

 빈 들/빈 길을 걷다

 빈 하늘/빈 산/빈 나무

 빈 들/빈 길

 빈 공간이/좋아라

 마음도/몸도/배도/비워야 한다

 비우고 비워/가볍고/넓고/깊게/하고 싶다

 비우고 비워/하늘이 되고 싶다-


여기서 착안한 오늘 강론의 주제, ‘비우고 비워 하늘이 되고 싶다’입니다. 바로 이런 경지에 도달한 분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십니다. 텅 빈 무욕에서 샘솟는 지혜와 사랑과 기쁨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이 경지에 이른 분입니다. 


문제는 탐욕입니다. 불가의 ‘탐진치貪瞋癡;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보다시피 탐貪에서 시작되는 진치瞋癡입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 역시 탐욕의 집착에서 시작되는 고통임을 봅니다. 두려움도 탐욕에서 나옵니다.


무위당 장일순의 기념관에 있다는 그분의 좌우명같은 글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파출명 저파비人怕出名, 猪怕肥’,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듯이 사람은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허욕을 경계한 말인데 사람 역시 탐식으로 살쪄 무거워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갈수록 가벼워졌으면 좋겠는 데 이래저래 무거워 짐이 되기 쉬운 몸과 마음입니다.


선불교의 제5조로 알려진 홍인의 두제자 신수와 혜능의 비교가 흥미롭습니다. 선불교 선사들은 그리스도교 사막의 수도승들과 흡사하여 깨달음의 일화들이 참 흥미진진합니다. 결국 선불교 제6조가 된 분은 혜능입니다. 혜능은 몸이 가벼웠기 때문에 허리에 돌을 매고 방아를 찧곤 했다합니다. 스승 홍인이 누가 반야의 지혜를 깨쳤는가 게송을 바치라 했을 때 신수와 혜능의 게송이 참 좋은 묵상감입니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이고         身是菩提樹  
 마음은 거울과 같다               心如明鏡臺  
 때없이 부지런히 갈고 닦아서  時時根拂拭  
 티끌과 먼지가 타지 않게 하라 莫使有塵埃-


위 게송을 지은 신수가 흡사 오늘 복음의 철저한 단식 수행자들인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을 연상케 합니다. 바로 이것이 신수의 한계이자 대부분 수행자들의 한계입니다. 위선僞善과 허영虛榮, 자만自慢을 벗어 날 길이 없습니다. 바로 이 경지는 제 '나무와 호수'라는 시중 앞부분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홍인의 인가를 받은 분은 혜능의 게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없고       菩提本無樹
 거울 또한 대가 아니라네          明鏡亦非臺
 본래 어떤 물건도 없는데          本來無一物
 어디에 티끌과 먼지가 붙겠는가 何處惹塵埃-


참으로 깨달음의 절정에 이른 대자유인의 경지에 이른 혜능이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바로 이 경지는 제 '나무와 호수' 라는 시중 뒷부분 '아예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에 해당됩니다. 환상이 걷힌 깨달음의 눈, 사랑의 눈으로 보면 중생이 부처이듯이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이 본 것은 바로 하느님의 모상이자 자녀로서의 사람들입니다. 수행의 궁극 목표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갈고 닦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은총에 의한 깨달음이 궁극의 답입니다. 그러니 단식에 자유로웠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단식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단식의 때를 분별했던 것입니다. 분별의 지혜 역시 무욕에서 나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늘 새 부대에 새 포도주의 기쁨의 축제를 살았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새삼 무욕의 사랑, 무욕의 지혜, 무욕의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참으로 깨달은 각자의 자유인이셨지 결코 창백한 수행자라 볼 수 없습니다. 참으로 비우고 비워 하늘이 되신 무애無碍의 대자유인이셨습니다. 하여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이자 사람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바로 어제 주일의 화답송 후렴이 깨달음의 비결을 보여 줍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삶을 요약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려는 소원으로 살 때 무욕의 삶에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울이 하느님의 마음을 잃었던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탐욕으로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사울이었습니다.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 전리품 가운데 가장 좋은 양과 소를 끌고 왔다는데 제가 볼 때 이건 변명이고 원인은 탐욕입니다. 사무엘이 하느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무욕의 깨끗한 마음일 때 주님의 말씀을 듣는 본질적인 일에 충실합니다. 무욕의 ‘깨달은 자覺者’는 바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聽者’요 ‘실천하는 자行者’임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매일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비우고 비워진 새 부대의 하늘 마음 안에 새로운 은총의 포도주를 가득 담아 주십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시편50,23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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