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6.12.17.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창세49,1-2.8-10 마태1,1-17



예수님의 족보

-하느님의 은혜로운 발자취-



오늘 12월17일부터 본격적으로 바짝 깨어 예수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막바지의 절정의 기간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대림시기 새벽성무일도 초대송은 ‘오실 임금께, 어서 와 조배 드리세’ 였는데, 오늘부터는 ‘주께서 이미 가까이 오셨으니, 어서와 조배 드리세’로 바뀌었습니다. 저녁성무일도시 성모의 노래 후렴도 ‘오-’로 시작되는 장엄한 내용이며, 오늘은 ‘오, 지혜-’로 시작됩니다.


“오 지혜 지극히 높으신 이의 말씀이여, 끝에서 끝까지 미치시며, 권능과 자애로 다스리시는 이여, 오시어 우리에게 슬기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


오늘은 이 후렴에 걸맞게 하느님의 지혜 자체이신 예수님의 긴 족보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참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복음독서입니다. 그 이름 목록에는 우리 대부분의 신자들에게 거의 무의미해 보이는 인물들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간역사안에, 모든 덕과 악덕을 지닌 인간역사안에 완전히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 크리스천에 의해서 유대 크리스천 신자들을 위해 쓰여진 복음입니다. 하여 복음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전통의 연속선상에 예수님이 위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분도 아니고 반역자나 매국노도 아닌 오히려 그 반대로 하느님과 그 백성들 간의 기나긴 자연적 발전 과정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절정의 인물로, 메시아요 그리스도였습니다. 족보에 나온 인물들 모두가 인류의 절정인 예수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예수님의 계속되는 족보에 편입된 우리 역시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가 예수님의 족보를 묵주알이 달려있는 묵주에 비교한 적이 생각납니다. 묵주알이 묵주끈에 묶여 있을 때 한알한알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묵주끈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참으로 무의미한 존재가 되듯이,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이나 우리가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 끈에서 떨어져 나갈 때 족보의 인물들이나 우리는 예수님과 무관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시작됩니다. 족보에서 이 두 인물은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다윗 계열의 참 왕이 될 분이며,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아브라함의 계통을 잇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에 대한 축복의 예언이 비로소 예수님의 출현을 통해 성취됨을 봅니다.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22,18).


오늘 예수님의 족보는 십사 대씩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부분은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둘째 부분은 다윗부터 유배까지, 셋째 부분은 유배부터 요셉과 마리아까지로 끝납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든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1,16).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하느님의 인내의 기다림이, 겸손이 참 놀랍고 감격적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까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무능하다 여겨질 정도로 묵묵히 끝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낳고’의 주인공이 전부 남자였는데 여기서는 마리아로 그 주인공이 어머니인 마리아로 바뀜이 주목할 만 합니다.


마리아의 삶은 인간적 안목으로 볼 때 얼마나 기구하고 파란만장했는지요. 앞서 족보에 나오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들인 다말, 라합, 룻, 솔로몬의 어머니 바쎄바와 일맥상통합니다. 다말과 아합은 가나안 원주민 출신이고 룻은 모압 출신, 바쎄바는 히티트 출신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니 네 부인은 자신이 이방인이거나 남편이 이방인이었습니다. 


모두가 정통 이스라엘 출신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마태오는 이 여인들을 예수님의 족보에 편입시킨 것입니다. 하여 예수님의 족보는 한없이 다채롭고 풍요로워졌으며, 하느님의 품은 얼마나 넓고 깊은지 깨닫게 됩니다. 사람 눈에 이방인, 죄인, 죄녀들이지 하느님 눈에 보이는 것은 당자의 사람됨됨이요 믿음뿐임을 깨닫습니다.


여기서 잠시 소개하고 싶은 인물이 유다입니다. 제1독서에서 보다시피 야곱의 축복을 받는 유다가 형제들중 군계일학의 독보적 모습입니다.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예언대로 마침내 왕홀은, 지휘봉은 떠나지 않다가 예수님께로 그대로 영원히 인계되었습니다. 도덕적으로 보면 유다 역시 하자가 많았던 분입니다. 창세기 38장은 유다와 그의 며느리 타마르와의 불륜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창녀가 며느리 타마르인줄 모르고 관계하여 아이까지 낳았으니 오늘날 우리 상식으로는 참 민망스럽기 짝이 없는 유다의 스캔들입니다. 


새삼 성경은 윤리교과서가 아니라 구원의 책이요, 하느님이 보시는 바는 우리의 죄가 아닌 믿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죄책감에 너무 시달리지 말고 주님 향한 믿음을, 사랑을 키우는 것이 제일이겠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정말 은혜롭기 한이 없습니다. 메시아의 가계가 바야흐로 끊어지려는 순간순간에 하느님이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가계를 이어가신 것이니, 이 여인들은 하느님이 극적으로 개입하신 순간순간의 유용한 도구들이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불가사의의 극치이자 절정은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은 마리아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족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예수님의 족보에 편입된 우리의 은혜로운 신분을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주님은 여전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우리의 삶에 은혜로이 개입하시어 당신 최상最上, 최선最善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시편72,7ㄴㄷ참조).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04 영성의 시냇물 -“한결같은 주님 사랑, 말씀 사랑, 형제 사랑”-2023.5.8.부활 제5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3.05.08 277
1703 영성의 대헌장; 진복팔단 -행복은 발견이다-2016.6.6.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6.06.06 259
1702 영광스런 삶과 죽음 -예수님이 답이다-2018.3.18. 사순 제5주일 1 프란치스코 2018.03.18 144
1701 영광스러운 죽음-2015.5.22. 부활 제7주간 금요일 - 프란치스코 2015.05.22 180
1700 열정과 환대-2015.11.17. 화요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1207-1231)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5.11.17 315
1699 열매 풍성한 삶 -부단한 나눔과 비움의 사랑-2019.8.10.토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258) 축일 1 프란치스코 2019.08.10 204
1698 연옥에서 천국을 사는 사람들 -온유와 겸손-2017.11.2. 목요일 위령의 날 1 프란치스코 2017.11.02 152
1697 연민과 겸손의 바다같은 신비가 -오, 자비와 지혜, 신비의 하느님이여!-2023.11.6.연중 제31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3.11.06 153
1696 연민과 겸손 -참여형과 은둔형-2015.1.15. 연중 제1주간 목요일(뉴튼수도원 66일째) 히브3,7-14 마르1,40-45 1 프란치스코 2015.01.15 764
1695 연민(compassion)의 사람-2015.10.30.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5.10.30 178
1694 연대의 힘-2015.8.29. 토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5.08.29 303
1693 역사는 현재現在다 -하느님은 조화調和이시다-2018.3.27. 성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8.03.27 134
1692 역사는 반복되는가 -날마다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삽시다-2023.12.28.목요일 죄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프란치스코 2023.12.28 132
1691 여전如前한 삶 -영원한 현역現役, 영원한 학생學生-2016.5.15. 월요일 성 빠코미오 아빠스(287-347)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7.05.15 107
1690 여여如如한 삶 -수행자의 삶-2017.9.23. 토요일 피에트첼치나의 성 비오 (1887-1968)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7.09.23 165
1689 여러분은 무슨 맛으로 살아 가십니까? -하느님 맛, 또는 돈 맛-2019.4.17.성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4.17 121
1688 언제 어디서나 일하시는 하느님 -하늘 나라의 실현-2019.7.10.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7.10 158
1687 어제나 내일이 아닌 오늘! -오늘,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2019.11.20.연중 제33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9.11.20 162
1686 어머니를 그리며 -어머니 예찬-2019.8.15.목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1 프란치스코 2019.08.15 221
1685 어린이처럼-2015.10.1. 목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1873-1897) 축일 프란치스코 2015.10.01 739
Board Pagination Prev 1 ...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 172 Next
/ 172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