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3.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로마2,1-11 루카11,42-46

 

 

 

하느님만 찾는, 하느님 중심의 행복한 삶

-지혜, 겸손, 진실, 섬김-

 

 

 

비전이, 꿈이. 희망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우리 궁극의 비전이자 꿈은, 희망은 하느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아니 우리 하나하나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비전이, 꿈이, 희망이 되어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살아야 합니다. 이래야 하느님도 기뻐하시는 참 행복한 삶입니다. 

 

어제 불암산을 바라보며 강처럼 흐르듯 수도원 하늘길을 걸으며 옛 자작 좌우명 애송시, 산과 강을 보완하며 읽어 봤습니다.

 

-“밖으로는 

늘 새롭게 한결같이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거기 그 자리 정주의 산

 

안으로는

늘 새롭게 끊임없이

천년만년

임 향해

굽이굽이 맑게 흐르는 강”-

 

밖으로는 임 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임 향해 흐르는 강, 바로 하느님만을 찾는 베네딕도회 수도승 삶을 표현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만을 찾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산山과 강江의 영성을 살아가는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입니다. 

 

“행복하여라! 하느님만을 찾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감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을 꾸짖으시며 하시는 불행 선언에 맞서 저는 하느님만을 찾으며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행복을 선언하고 싶습니다. 어제 저녁 휴게시간 요셉 수도원 34년 역사를 망라한 원장수사가 만든 수도원 사진첩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요셉 수도원에 비전이 없다.”

말하며 오래 전에 왜관 수도원에 돌아간 수도형제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고 당시 우리의 영원한 비전이자 꿈은 그리스도 예수님뿐이라는 제 지론과 더불어 1992년1월15일 왜관 수도원 종신서원 미사시 제 강론 일부가 선명히 떠올랐습니다. 읽을 때 마다 새로운 감동에 젖으며 하느님만을 찾는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 전의戰意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부단히 하느님만을 찾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수도생활을 판가름하는 시금석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하느님을 찾는 열정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며, 이때 하느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찾아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거룩한 사람이라도 모이면 세속이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훌륭한 스승을 찾아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함께 살다보면 초라하고 실망스럽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참 스승은 그리스도 예수님뿐입니다.

 

우리는 좋은 환경을 찾아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도 하느님을 찾지 않으면 답답한 벽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출세하러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닙니다. 작은자 되어 주님과 형제들을 겸손히 섬기러 왔습니다. 중의 벼슬은 닭 벼슬만도 못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실현을 찾아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닙니다. 자기실현은 다만 하느님을 찾는 삶의 부산물로 따라 오는 은총의 선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하러 수도원에 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일은 무엇을 ‘하는데(to do)’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데(to be)’있습니다.

 

우리의 공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허영을 만족시키는 헛된 공부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겸손해지는 공부여야 합니다.

 

혹자는 수도원에 비전이, 꿈이 없다고 말합니다. 당연합니다. 비전이 꿈이 있다면 그리스도 예수님뿐이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느님만을 찾는 단순한 삶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밖의 모두는 환상이요 우상일 뿐입니다. 결과는 환멸입니다. 그 무엇도 자기 에고를 충족시켜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 삶이 시끄러이 우상을 찾아 나서는 외적 여정이 아니라, 고요히 하느님을 찾는 내적 여정임을 단단히 못박아 두는 일입니다. 우상이 아니라 고요히 하느님을 찾는 내적 여정임을 단단히 못 박아 두는 일입니다. 우상이 아닌 살아 계신 하느님께 깊이 뿌리 내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찾아 수도원에 왔습니다. 결코 뜬 구름 잡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공동체내에서 스승이신 성령의 인도하에 성서와 규칙서를 길잡이로 하여 하느님을 찾는 여정입니다.

 

삶은 끊임없는 배움과 정화의 여정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의 궁극 목표인 마음의 순결에 이르러 하느님을 만납니다. 물도 고이면 썩둣이 하느님을 찾지 않으면 정주는 안주로 직결되어 타락은 명약관화합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열정에 있습니다. 하느님을 찾을 때 순수와 열정도 살아나며 제 색깔을 지닐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일치도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데서 이루어 집니다. 그러니 부단히 하느님을 찾는 내적 등정의 여정에 올라야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길을 잃은 오늘날 신자들에게 주는 말씀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지금 제 나이 73세, 무려 29년전 44세때 강론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공감이 가는 수도생활뿐 아니라 신자생활의 진수가 담긴 내용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과 제1독서에 대한 답을 줍니다. 하느님을 찾는,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일탈했기에 무지요 허영이요 거짓이요 교만이기에 불행 선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은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교사들아!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하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으로 하느님을 떠날 때 이런 무지, 교만, 위선, 거짓의 어리석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비단 일부 일탈한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뿐 아니라 이런 무지의 교회 지도자들이나 신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초발심의 자세로 돌아가 하느님 중심의 삶을 회복하여 지혜와 겸손, 진실과 섬김의 행복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제1독서 로마서에서 바오로는 남을 심판하는 자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는다며 남을 심판하는 자들을 준열히 꾸짖으며 이들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 또한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일탈함으로 무지에 눈먼 탓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찾아 앎으로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눈 밝은 이들은 절대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참으로 하느님만을 찾으며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이들에게 축복이 있음을 천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꾸준히 선행을 하면서 영광과 명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선택의 은총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삶도, 하느님 중심의 삶도 선택입니다. 참으로 살아 있는 그날까지 한결같이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을,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을, 교회를 사랑하여 교회를, 지혜를 사랑하여 지혜를, 겸손을 사랑하여 겸손을, 진실을 사랑하여 진실을, 섬김을 사랑하여 섬김의 삶을 선택하여 시종여일하게 살아 낼 때 비로소 행복한 삶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화답송 시편이 참 은혜롭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내 구원이 오리니,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내 희망이 오리니, 내 영혼 그분을 고요히 기다리네.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아라.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이시다.”(시편62,2-9참조). 아멘.

 

 

 

 

  • ?
    고안젤로 2021.10.13 10:21
    사랑하는 주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한마디 한마디에 생명이 있는듯 보는이로 하여금 더욱
    주님 사랑에 빠져들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주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삶
    기도와 회개를 통한 삶을 통해
    언젠가 자신있게 주님 만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안젤로 야 너 어디 있느냐?
    네 저 여기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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