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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17.연중 제16주일                                                창세18,1-10ㄴ 콜로1,24-28 루카10,38-42

 

 

환대의 축복

-사랑하라, 경청하라, 훈련하라-

 

 

환대란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습니다. 분도회의 정주서원과 직결된 환대의 영성입니다. 그래서 환대의 대한 강론도 참 많이 하면서 환대의 집인 수도원에 환대의 사람인 수도자라 많이도 강조했습니다. 환대의 사랑, 환대의 기쁨, 환대의 축복입니다. 따뜻한 환대의 추억은 길이 잊지 못하는 반면 냉대의 상처 또한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규칙서에도 환대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장차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성규53,1)

 

수도원은 문이 둘이 있어 앞문은 세상에 열려있고 뒷문은 사막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앞문을 통해서는 찾아오는 손님들을 환대하고 뒷문을 통하여서는 하느님과 부단히 친교를 깊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주서원을 살아가는 분도회원들은 밖에 나가 선교하기 보다는 찾아오는 손님들을 환대함으로의 존재론적 선교임을 깨닫게 됩니다. 수도원은 선교의 장이 됨과 동시에 환대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환대의 영성은 비단 분도회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인들의 전통적 덕목이기도 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환대의 정신이 살아 있어 신자 가정이라면 불시의 방문객을 위해 양초와 마른 빵과 담요를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환대는 역시 우리 민족의 전통적 덕목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날 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던 조선 사람들은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이라 하여 손님 환대를 조상에게 제사 올리는 것처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한국식 전통 가옥에는 반드시 사랑방이 있어 찾아 오는 손님들을 환대하였고 이는 제가 어렸을 때 수없이 목격한 일입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손님을 맞이하고 면담고백 성사를 주는 수도원 제 집무실은 수도원의 사랑방이기도 합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던 참 아름다운 환대의 전통이 거의 사라진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다시 환대의 영성, 환대의 정신을 회복해야 할 절박한 시절입니다. 예전 써놓고 자주 나눴던 ‘환대’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환대는 꽃처럼 하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찌프린 적이 있더냐

하루 이틀 몇 날이든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서

활짝 핀 환한 얼굴로

오가는 이들 

맞이하고 떠나 보내는

주차장 앞 코스모스꽃 무리들

피곤한 기색 전혀 없다

볼 때마다 환해지는 마음이다

환대는 꽃처럼 하는 것이다”-2000.9.27.

 

지금도 곳곳에서 끊임없이 폈다지는 무수한 꽃들이 흡사 하느님의 환대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환대의 사랑, 환대의 기쁨, 환대의 축복입니다. 어떻게 하면 환대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겠는지 그 방법을 소개합니다.

 

첫째, 사랑입니다.

환대의 사랑입니다. 환대의 원조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입니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은 모두 내게 오라 환대하시는 주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를 환대하시는 주님의 환대의 사랑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사제의 변화와 쇄신은 미사 거행하는 마음과 태도에 달려있다 합니다. 참으로 주님 친히 환대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라면 본인은 물론 신자들에게 이보다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잠시 공동의 집인 지구에 머물다 가는 우리 모두는 순례자들이자 손님들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환대의 은혜와 축복의 사랑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15,1) 말씀하신 주님이십니다. 참으로 진짜 농민들은 환대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누구보다 잘 깨달아 하느님을 환대하고 섬기듯 땅도 농작물도 그렇게 대할 것입니다. 아마 가장 하느님 가까이 살아가는 하느님을 닮은 참 수행자가 농민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한결같이 사랑하고 환대하여 늘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꽃처럼 환한 얼굴로 환대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환대의 모범이 바로 바오로 사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바로 이런 그리스도를 환대하여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정주처인 ‘그리스도 안에서’ 날로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깊어 갈 때, 비로소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환대의 축복에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필수 전제 조건이 됩니다.

 

둘째, 경청입니다.

환대의 경청입니다. 참행복도 참기쁨도 환대의 경청, 관상의 경청에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경청을 사랑합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가 환대의 모범입니다. 환대의 경청입니다. 내 식대로, 내 좋을 대로의 환대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환대입니다. 

 

마르타 역시 환대의 사람이었지만 환대의 우선 순위를 잊었습니다. 분별의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우선적인 것이 환대의 경청입니다. 귀기울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귀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두 자매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흡사 관상가 마리아, 활동가 마르타의 대조같습니다. 관상과 활동, 모두가 주님 사랑의 표현으로 우열의 관계이기 보다는 상호보완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선순위입니다. 환대에도 우선 순위가 있으니 우선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귀기울여 경청하는 것입니다. 참행복은 환대의 경청, 관상의 경청에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미사도 말씀전례후에 성찬전례가 있고, 수도원의 식당에서의 세끼 식사에 앞서 성당에서의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마르타를 사랑하고 계신지 불평하는 마르타를 다독거리며 충고하시는 말씀을 통해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마르타의 무지를 일깨우는, 영적 삶의 우선순위를 주지시키는 주님의 자비로운 충고 말씀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심중을 헤아려, 또 진리에 목말라 주님의 생명과 빛의 말씀에 귀기울여 듣는 경청을 선택하여 주님을 환대했고 주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실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삶의 중심과 질서가 잡힐 때 삶은 단순해져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 수 있지만, 관상의 경청이 사라질 때 끝없는 활동에 중독되어 본말전도, 주객전도의 삶으로 복잡하고 혼란한 삶중에 참나를 잃을 수 있습니다. 얻은 것은 소유인데 잃은 것은 존재라면 이보다 어리석고 허망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토마스 머튼은 단호히 현대판 이단은 ‘활동주의(activism)’라 말합니다.

 

셋째, 훈련입니다.

환대의 훈련, 경청의 훈련입니다. 평생 배우고 훈련해야할 환대와 경청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환대와 경청에서 평생 학인이자 평생 훈련병입니다. 참으로 사랑과 근면과 겸손의 덕이 요구되는 환대와 경청의 배움이요 훈련입니다. 주님의 환대는 좀 추상적이고 막연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환대하고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이들은 보이는 사람들을 주님처럼 환대하며 그들의 말에 귀기울여 경청합니다. 정현종의 방문객이란 시는 늘 읽어도 공감하며 그 깊이에 감동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도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사람이 온다는 것이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임은 주님께서 함께 오신다는 것입니다. 아니 사람을 통해 주님이 방문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정현종 시인은 이점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바로 이래서 환대와 경청의 훈련입니다. 우리의 직무는 섬김의 직무 하나라 했습니다. 막연한 주님의 섬김이 아니라 환대의 섬김, 경청의 섬김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의 마르타는 주님께 환대와 경청의 중요성을 잘 배워 큰 깨달음을 얻었음이 분명합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과연 환대의 달인이요 환대의 대가입니다. 그가 얼마나 환대와 경청이 잘 훈련되어 있는지 한눈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지극 정성의 극진한 환대인지 사람들을 대접했는데 하느님과 두 천사들을 대접한 것입니다. 혹자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계시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사람 환대가 바로 주님 환대에 직결되는 참 신비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환대의 축복입니다. 환대 자체가 이미 참행복의 축복인데 이에 더하여 주님은 축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환대에 감격한 주님은 그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거라 말씀하시며 축복을 약속하니 말 그대로 환대의 축복입니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환대의 사랑, 환대의 기쁨, 환대의 축복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환대의 영성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늘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이웃을 통한 주님 환대와 경청의 훈련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환대의 축복이 늘 함께 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환대해 주시며 또 환대의 사람으로 우리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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