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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9. 주님 공현 후 금요일(뉴튼수도원 60일째)                                             1요한5,5-13 루카5,12-16

 

                                                                               참된 안식(安息)

 

                                                                  -천형(天刑)이 천복(天福)으로-

 

수도원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안식년을 맞이하여 잠시 수도원을 떠난 지금도 '말씀의 낙(樂)'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영혼'입니다. 도대체 '말씀의 낙없이 무슨 낙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말씀의 은총을 통한 자아초월(self-transcendence)의 가난이요, '가난한 영혼'에게 선사되는 참된 안식입니다. 

 

새벽 창 밖이 환해서 순간 눈이 떠졌습니다. 주님이 등불을 환히 켜들고 저를 깨우셨던 것입니다. 보름 후 며칠 지나지 않았기에 밤 하늘에 달린 둥근 달, '주님의 등불'이 온누리를 환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주님 안에 머물 때 비로소 참된 안식에 평화요, 참된 위로에 치유입니다. 안식년을 맞아 언제 어디서든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 있는 제 삶입니다. 문득 떠오른 다음 성경 말씀이 안식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게 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

 

역시 제가 고백성사 때 보속의 처방전 말씀으로 많이 써드린 구절입니다. 공동번역의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새삼 '안식' 역시 주님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만드는 안식이 아니라 주님의 선물인 안식입니다. 주님이 참된 안식을 주셔야  안식년을 잘 지낼 수 있습니다. 곧 이어지는 다음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11,29).

참된 안식의 정체를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학원인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복된 멍에를 메고 온유와 겸손의 예수성심(聖心)의 사랑을 배워나갈 때 비로소 안식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바 후반부 구절입니다. 공동번역은 '너희' 대신에 '너희의 영혼'으로 되어 있고, 이 단어 선택이 더 적절하고 분명합니다. 바로 '나'는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참 나'의 전인적 존재가 되는 것은 영혼이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때입니다. 

 

영혼을 잊고, 영혼을 잃고, '영혼 없는 사람들'처럼 사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마음 깊이에는 누구나 영혼의 안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 고향이나 성당 또는 수도원, 성당 묘지나 수도원 묘지를 찾는 마음, 역시 영혼의 움직임이요 궁극의 본향(本鄕)인 하느님을 찾는 영혼들임을 상징합니다. 

 

얼마 전 방문했던 미국 성당 곁에 넓고 평화롭게 자리잡은 성당 묘지를 보면서도 삶과 죽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하느님의 집, 영혼의 고향같은 성전임을  깨달았습니다. 모교(母校), 모원(母院), 모태(母胎), 모원(母鄕)이란 단어들을 통해서 역시 우리의 시원(始原)인 하느님의 모성을 찾는 영혼들의 갈망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어제 하루도 참된 안식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날입니다. 10여년 이상 매일 요셉수도원 홈페이지에 올리던 강론을 홈페이지 수리차 올리지 못하니 심란(心亂)하고 불편했습니다. 바로 영혼의 고향을 상징하는 요셉수도원의 홈페이지였던 것입니다. 얼마 후 완전히 새롭게 단장된 홈페이지에 강론을 올림으로 비로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참 고향은, 본향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 안에 머무를 때 참된 안식에 영원한 생명의 체험입니다. 진정 살아있는 삶이 됩니다. 어제 홈페이지에 가입할 때의 순간적 선택도 재미있었습니다. 비밀번호를 잊었을 경우를 대비한 '최고의 보물은 무엇인가?'묻는 물음에, 즉시 '하느님'이라  써 넣었습니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결코 잊을 수 없는 명칭, '하느님'에 아주 만족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의 영원한 화두는 '사랑'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아드님을 통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인 영원한 생명의 사랑이 바로 영혼을 살게하며 참 안식과 평화를, 참된 위로와 치유를 줍니다. 바로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의 치유가 이를 입증합니다. 천형(天刑)이라 일컫는 나병의 치유는 천주(天主)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천형(天刑)이 천주(天主)를 만나 치유되니 천복(天福)이 되었습니다. 나병이 상징하는 바 우리의 고질적 영적, 육적, 정신적 질환입니다. 사실 내적 깊은 상처의 아픔과 열등감으로 많은 이들이 영적, 육적, 정신적 천형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복음의 나병환자의 영적 후각(嗅覺)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온 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은 예수님을 보자 본능적으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청합니다. 완전히 자신을 비운 겸손의 극치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춰 비웠을 때 주님을 만납니다. 참 간절하고 절실한 기도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에 응답한 주님의 자비로운 치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나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습니다. 나병환자의 간절하고 절실한 믿음에 예수님의 '연민의 마음', '사랑의 텃치', '능력의 말씀'의 삼박자 응답으로 일어난 기적입니다. 주님을 만나 전인적 치유로 영육의 참된 안식을 선물 받은 나병환자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이 참된 안식의 비밀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외딴 곳이 상징하는바 우리의 은밀한 기도처이자 주님을 만나는 참된 안식의 자리입니다. 영혼이 살기위해, 참된 안식을 위해 외딴 곳의 장소와 시간은 필수입니다. 평생, 매일, 규칙적으로 이렇게 우리의 기도처이자 안식처인 주님의 집, 성전에서 간절한 미사전례를 통해 주님을 만날 때, 선사 받는 참된 안식과 평화, 위로와 치유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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