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6.8.22. 월요일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2티모1,1-5.11ㄴ-12 마태23,13-22


                                                                              진실과 겸손


오늘 마태복음은 일곱 차례 불행 선언 중 세 차례까지의 불행 선언을 소개합니다. 마태오는 이 단락에서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을 위선자들이라 낙인찍습니다. 그들이 율법의 세칙들을 곧 잘 지키면서 율법의 기본정신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이 율법의 기본정신인 사랑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여기서 ‘불행하여라’는 말마디는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예수님의 깊은 아픔, 또는 심판예고로 까지 이어지는 분노를 들어냅니다. ‘행복하여라’로 시작되는 행복선언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불행선언의 대상은 물론 행복선언의 대상도 될 수 있는 두 가능성의 인간입니다. 누구나 혐오하는 사람이 속과 겉이 다른 표리부동의 위선자일 것입니다. 


진실과 겸손의 반대가 거짓과 교만의 위선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삶이 아닌 위장된 삶의 위선자들입니다. 여기에다 본말전도의 분별력까지 결여된 눈먼 인도자들이라는 비판까지 받게 되니 참 문제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소개되는 율사와 바리사이의 불행선언의 내용입니다.


1.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2.개종자 한 사람이 생기면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린다. 3.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제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는 완전히 분별력을 잃은 어리석고 눈먼 인도자들이다. 


위 셋의 불행선언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상식을 벗어난 일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생각이 듭니다만 현실입니다. 생각없이 살다가는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음은 작금의 현실을 봐도 짐작이 됩니다.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양 극단의 관점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을 예수님이 예리하게 직시하고 통찰할 수 있음은 바로 그분의 겸손임을 깨닫습니다. 진정 겸손한 자만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통찰하는 지혜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어제 독서 중 두 대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 모든 걸 알아냈소? 당신은 악마란 말입니까?”

“나는 인간입니다.”

그는 엄숙하게 대답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에 모든 악마를 가지고 있지요.”-


바로 이것이 인간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는 겸손의 수행이 없으면 악마도, 위선자도, 눈먼 인도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 겸손에 관한 설명도 의미심장합니다.


“겸손함은 거인의 어머니입니다. 골짜기에 있는 사람들은 거대한 것을 봅니다. 하지만 정상에 있는 사람들은 작은 것들을 볼뿐이지요.”


마치 복음의 예수님과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대조같습니다. 겸손으로 내려간 이들은 실상을 정확히 보지만 저 위의 정상에 있는 교만한 이들은 지엽적인 작은 것들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려가야 보이는 삶의 진실이며 바로 겸손한 이들의 특권입니다.


오늘 복음의 분위기가 어둡고 무겁다면 독서의 분위기는 아주 밝고 역동적입니다. 진실과 겸손이 바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독서의 바오로, 실바누스, 티모테오 그리고 테살로니카 교회의 분위기입니다. 우선 테살로니카 교회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내리시기를 빈 다음 이어지는 사도의 격려 서간 내용이 참으로 고무적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때문에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나고 저마다 서로에게 베푸는 여러분 모두의 사랑이 더욱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보여 준 인내와 믿음 때문에,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


은총, 평화, 감사, 믿음, 사랑, 인내 등 모두 겸손과 관련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말마디들입니다. 복음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박해와 환난을 통해 정화된 믿음과 사랑의 테살로니카 교회의 신도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북돋아 주시고 거짓되고 위선된 마음을 진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바꿔 주십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24 새로운 출발 -끝은 시작이다-2016.7.9.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16.07.09 159
1323 새가정, 성가정 공동체 -기도, 말씀, 실행-2016.7.19.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16.07.19 248
1322 새 하늘과 새 땅 -말씀을 통한 새로운 창조-2016.3.7. 사순 제4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6.03.07 187
1321 새 하늘과 새 땅 -꿈꾸는 사람, 춤추는 사람-2015.3.16. 사순 제4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5.03.16 328
1320 새 하늘과 새 땅 -창조와 구원-2020..3.23.사순 제4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0.03.23 156
1319 새 하늘과 새 땅 -창조와 구원-2019.4.1.사순 제4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4.01 114
1318 새 하늘과 새 땅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2021.3.15.사순 제4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21.03.15 131
1317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그리스도 중심의 삶- 022.1.17.월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2.01.17 173
1316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파스카의 꽃’같은 삶-2021.9.3.금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540-604) 축일 1 프란치스코 2021.09.03 181
1315 새 인간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자-2016.7.31. 연중 제18주일 프란치스코 2016.07.31 285
1314 새 인간 -생명의 빵인 예수님이 답이다-2021.8.1.연중 제18주일 1 프란치스코 2021.08.01 150
1313 새 예루살렘 -참 겸손한 이들이 영원히 머무는 곳-2022.11.28.대림 제1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2.11.28 188
1312 새 예루살렘 -늘 깨어 기도하여라-2020.11.28.연중 제34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0.11.28 864
1311 새 삶의 시작 -죽음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歸家다-2020.7.13.월요일 고故 이 정우 바오로 수사(1933-2020)를 위한 위령미사 1 프란치스코 2020.07.13 198
1310 새 사람의 삶 -사랑하라, 그리고 또 사랑하라-2019.9.12.연중 제23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9.12 135
1309 새 가정 인류 공동체 -하느님의 영원한 꿈-2015.1.27. 연중 제3주간 화요일(뉴튼수도원 78일째) 프란치스코 2015.01.27 350
1308 삼위일체의 삶 -늘 새롭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2020.6.7.주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6.07 159
1307 삼위일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개방, 나눔, 관계, 겸손-2017.6.11.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프란치스코 2017.06.11 205
1306 삼위일체 하느님-2015.5.31.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프란치스코 2015.05.31 426
1305 삼감三感 가득한 하루의 순례여정 -주님의 길을 닦으십시오-2017.12.23. 대림 제3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17.12.23 156
Board Pagination Prev 1 ...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 173 Next
/ 173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