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7.11.20.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1마카1,10-15.41-43.54-57.62-64 루카18,35-43



영원한 구원의 갈망

-개안開眼의 여정-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갈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을 알고 싶은 갈망입니다. 궁극엔 주님의 얼굴을 보라 있는 눈이요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 있는 귀요 주님을 찬양하라 있는 입이요 주님을 따르라 있는 발입니다. 오늘 복음은 복음서의 요약과 같습니다. 소복음서라 불려도 손색이 없습니다.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사람은 그대로 ‘무지에 눈 먼’ 가난한 인간을 상징합니다. 운명론자들이 보기에는 참 불행하게 타고난 사람처럼 보입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일기일회一期一會, 일생 단 한 번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아프면 소리쳐야 하고 갈망이 있으면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래야 주님도 압니다. 마침내 주님을 만난 걸인의 간절한 기도, 자비송입니다. 우리가 궁극에 바칠 기도문도 이것 하나뿐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데는 장애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앞서가던 이들이 그에게 장애물입니다.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이 결핍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잠자코 있으라 꾸짖으며 막지만 눈 먼 걸인은 더욱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재차 거듭되는 참으로 절박한 기도입니다. 내면에 잠재해 있는 영원한 갈망의 표출입니다. 정말 주님을 만나 참 나를 살고 싶은 구원의 갈망입니다. 이어지는 주님과의 대화가 흡사 스승을 찾은 구도자의 대화 같습니다. 간절하고 절실하기에 주고 받는 대화도 짧고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주님은 눈먼 걸인의 갈망을 알아챘음이 분명합니다. 눈먼 걸인은 바로 우리 모두의 갈망을 대변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간절한 갈망이 바로 믿음의 정체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 무지의 눈이 열린 걸인입니다. 정말 제대로 잘 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눈이 열려야 환상도, 허영도, 욕심도 걷히고 편견과 선입견도 사라져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합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바로 제대로 잘 보는 것이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눈 뜬 걸인의 다음 반응이 참 은혜롭습니다. 그는 즉시 다시 보게 되었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을 만나 눈이 열려 주님을 찬양하며 따를 때 비로소 자유인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된 걸인입니다. 


새삼 삶은 개안의 여정이자 자유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끊임없이 주님을 따를 때 눈이 열려 밝은 눈, 맑은 눈으로 주님을 잘 따를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양과 감사가 눈을 열어주고 주님을 만나게 합니다. 세상에는 무지에 눈 먼, 눈뜬 맹인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운명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길은 주님을 만나 눈이 열리는 길뿐입니다. 이래야 분별의 눈도, 지혜도 지닐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이스라엘의 변절자들이 바로 분별의 눈을 상실한 이들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버립니다. 이렇게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데 열중입니다.


무지에 눈이 멀어 분별의 눈을 잃었을 때 자행되는 온갖 악입니다. 오늘 날 역시 우리 주변에는 호시탐탐 노리는 악의 유혹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악은 평범합니다. 악은 디테일 안에 숨어 있습니다. 모르고 짓는 죄에 모르고 빠지는 악의 유혹도 부지기수입니다. 활짝 열린 눈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누구나 악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여 간절히 바치는 주님의 기도중 마지막 대목입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주님을 따를 때 열린 눈이지만 주님을 따르지 않을 때는 다시 무지에 눈먼 맹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를 때는 낙관론적 자유인이지만 주님을 따르지 않을 때는 비관론적 운명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주님을 찬양하며 따를 때 마음의 눈이 열려 무지로부터 해방이요 자유로운 삶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84 비움의 여정 -참나(眞我)의 삶-2020.8.10.월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258) 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8.10 153
1083 비움의 여정 -주님을 따름과 닮음-2024.1.8.월요일 주님 세례 축일 프란치스코 2024.01.08 146
1082 비움의 여정 -순교적 삶-2018.9.15. 토요일 고통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8.09.15 160
1081 비움과 실천의 여정 -성인이 되는 길-2018.10.4. 목요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1226)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8.10.04 204
1080 비움과 겸손의 수련修鍊 여정 -하느님 중심의 삶-2020.2.3.연중 제4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2.03 134
1079 비우고 비워 하늘이 되고 싶다 -사랑, 지혜, 기쁨-2018.1.15. 월요일 사부 성 베네딕도의 제자 성 마오로와 쁠라치도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8.01.15 157
1078 불암산 배경같은 성 요셉 -참 크고, 깊고, 고요한 분-2019.3.19.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1 프란치스코 2019.03.19 251
1077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제대로 미치면 성인, 잘못 미치면 폐인”2024.1.20.연중 제2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4.01.20 115
1076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2022.1.22.연중 제2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22.01.22 156
1075 불광불급(不狂不及) -“제대로 미치면 성인(聖人), 잘못 미치면 폐인(廢人)”-2023.1.21.토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291-304)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3.01.21 200
1074 분별의 지혜(2015.4.17. 부활 제2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5.04.17 222
1073 분별의 지혜 -하느님 중심의 기본에 충실한 삶-2018.9.7.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8.09.07 433
1072 분별의 지혜 -예수님의 사랑과 시야를 지녀라-2020.7.4.연중 제13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7.04 130
1071 분별의 지혜 -사랑은 분별의 잣대이다-2023.1.17.화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3.01.17 213
1070 분별의 잣대는 예수님 마음 -기도와 사랑, 지혜-2022.7.15.금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1217-1274)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2.07.15 204
1069 분별의 잣대는 예수님 -예수님과 사랑의 우정 관계가 결정적이다-2021.9.4.연중 제22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21.09.04 136
1068 분별의 잣대는 사랑-2017.9.9.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17.09.09 116
1067 분별의 잣대는 사랑 -착한목자 예수님-2017.5.8. 부활 제8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7.05.08 172
1066 분별의 잣대는 사랑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삶- 2020.10.30.연중 제30주간 금요일 ​​​​​​​ 1 프란치스코 2020.10.30 148
1065 분별의 잣대는 사랑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2019.1.21.월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9.01.21 119
Board Pagination Prev 1 ...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123 ... 173 Next
/ 173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