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7. 수요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1요한1,1-4 요한20,2-8 



충만한 기쁨

-생명의 말씀, 영원한 생명-



오늘은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천수를 누리신 사랑의 신비가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새벽성무일도를 보며 놀랍게 깨달은 사실은 성무일도 찬미가, 후렴 등 모두 안에 성 요한에 모든 중요한 정보가 망라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찬미가중 한 연만 나눕니다.


-“메마른 이 진세塵世를 적시는 이여/샘에서 넘쳐흐른 강물같으니

  마음에 간직하신 숱한 그 은혜/모든 이 소망대로 펴내는도다.”-


오늘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우리는 제1독서는 요한1서의 소개글로 시작됩니다. 주제는 ‘생명의 말씀’이며, ‘생명의 말씀’, ‘생명’, ‘영원한 생명’이란 말마디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즐겨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교를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영지주의쪽으로 끌고 가려는 이단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필자는 첫 증인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하기에 자기의 증언이 참되다고 증언합니다. 실로 우리 가톨릭 교회 공동체는 ‘사도적apostolic’임을 깨닫게 됩니다.


초대교회의 영지주의 이단자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이 참으로 인간몸을 취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영적 열정으로 그들은 모든 물질적인 것은 악하다고 결론지었고,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는 가능한 물질적인 모든 것을 배제할 때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물질적인 인간몸은 악하므로 그것은 하느님에 거슬린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영적인 것만이 좋은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몸으로부터 벗어날 때 가능하며 이는 그리스도를 믿음에 의해서가 아닌 특별한 지식, 즉 영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은 철저히 부정되고 몸은 악하다고 간주되기에 거칠게 다뤄집니다. 이런 영지주의로부터 시작된 금욕가들이 예나 이제나 골치덩어리였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영육이원론이 음탕한 행동으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물질은 악하고 하느님의 법에 해당되지 않기에 그 법을 깨는 것은 윤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영지주의 이단은 2-3세기 체계를 이루며, 이에 대한 언급은 요한 서간을 비롯하여 콜로사이서, 티토서, 베드로 2서, 코린토 1서 등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요한서는 이런 영주주의의 주장을 전적으로 거부하며, 이를 ‘말씀은 사람이 되셨다.’고 한 마디로 요약합니다. 즉 말씀이신 주님은 완전히 우리 물질적 상태안에 들어오셔서 그것을 축복하시고 성화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짜 복음입니다.


하여 오늘의 독서는 진짜, 육체적인 예수님을 즉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본 것’을 강조합니다. 교회가 선포한 분은 바로 참으로 육체적인 사람, 접촉할 수 있는 예수님이셨습니다. 교회안에는 늘 육체적인 것들로부터 떠나려는 경향이 있어 왔으며 이런 영지주의 이단의 경향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우리의 확신은 분명합니다. 물론 요한사가의 확신이기도 하며 교회의 확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것은 모두가 좋다는 것입니다. 중세 신비가들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창조된 모든 것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말씀이다. 살아있는 것 모두가 하느님을, 창조자를 말한다.’ 어느 신비가 시인은 ‘가장 깊이 내려가면 아주 새로움이 있다. 세상은 하느님의 장엄함으로 가득차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생명의 나눔은 요한 영성에 중심을 이룹니다. 하느님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눔이 바로 친교이며 이때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기도 합니다. 


오늘 요한1서는 요한복음의 말씀 찬미가(요한1,1-18)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며 일관된 증언을 하나로 요약하니 ‘예수님은 진짜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애제자 요한의 진면목이 오늘 복음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랑의 신비가, 사랑의 사도 요한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와 예수님의 애제자 요한이 사이좋게 나란히 등장합니다. 


이들 두 제자가 빈무덤 소식을 듣고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먼저 도착했다 하니 그의 사랑의 강도를 직감케 하는 묘사입니다. 시몬 베드로를 뒤따라 빈무덤에 들어가는 요한의 모습을 통해 수제자 베드로에 대한 ‘사랑의 배려’가 그의 매력적인 면모를 반영합니다. 다음 빈무덤에 들어가 한 눈에 상황을 직감한 요한의 다음 반응이 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보고 믿었다.’ 전광석화電光石火! 사랑의 눈, 믿음의 눈이 활짝 열린 요한은 그분께서 부활하신 표지로 직감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불신의 토마 사도를 보고 ‘보지 않고 믿는 이들이 행복하다’ 했는데 바로 요한이 그 좋는 모범이요, 요한뿐 아니라 보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이에 해당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이 본 것은 베들레헴 동굴이 아니라 빈무덤입니다. 바로 거기서 아기를 감싼 포대기가 아닌 수의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음을 깨달은 요한이요, 제1독서에서 요한은 우리 모두에게 이런 생명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저는 여기서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라는 대목에 대해 어제 읽은 참으로 심오한 영적 해석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탈출기34,34-35절의 모세와 비교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난 후는 얼굴이 눈부시게 빛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있을 때는 너울로 가렸고, 주님을 뵈오러 들어갈 때는 너울을 벗었다 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너울은 바로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예수님의 인성이요, 이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느님께 가신 예수님께는 너울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은 이제 새로운 사람 몸을 지니셨으니 바로 그분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스승 예수님은 새생명으로 부활하셔서 당신 교회 안에 영원히 현존하신다는 애제자의 확신입니다. 믿음의 눈만이 교회를 통해 새생명으로 부활하신 ‘너울을 벗으신’ 주님을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뵐 수 있게 하는 ‘은총의 빛’안에서 우리는 마침내 십자가는 물론 구유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되니, 바로 거기서 우리는 요한 사도와 함께 영원한 생명, 생명의 말씀, 생명으로 빛나는 파스카의 예수님을 뵈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당신 ‘생명의 말씀’을 모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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