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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21. 토요일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에페4,1-7.11-13 마태9,9-13

 

 

탈출의 여정, 따름의 여정

-부르심과 응답-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마태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면, 바오로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지낼까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부질없는 가정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이 없는 마태오를, 바오로를 상상할 수 없듯이 주님이 없는 우리들 역시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부름 받음은 말 그대로 은총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운명이자 사랑이되고 말았습니다. 우연은 없고 모두가 하느님 은총의 섭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따라라.”

 

주님은 세리 마태오에게 ‘나를 믿으라’, ‘나를 사랑하라’ 하지 않고 '나를 따라라'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세관에 앉아 있던 세리 마태오의 당신을 찾는 갈망을 한 눈에 알아채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러자 마태오는 즉시 일어나 주님을 따라 나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무의미한 일상의 늪에서 탈출하여 예수님을 따름으로 예수님의 제자공동체에 합류하게 된 마태오의 복된 운명적 변화입니다. 이제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에 오른 마태오입니다. 이제 ‘보고 배울’ 주님을 모신 마태오입니다. 분명한 것은 마태오의 삶에 비로소 목표가, 방향이, 중심이, 의미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주 예수님이 그의 삶의 목표가, 방향이, 중심이, 의미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것이 구원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이런 삶의 목표와 방향, 중심이자 의미이신 주님을 모르고 나도 모름으로 무지의 어둠속에 살다가 인생 끝낸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허망하겠는지요. 

 

혼자서는 영적성장도 성숙도 불가능합니다. 관계속의 인간입니다. 관계는 존재입니다. 관계를 떠나 살 수 없는 인간입니다. 믿는 이들의 삶은 주님은 물론 이웃과 함께 하는 여정입니다. 하여 주님은 당신 중심의 관계의 공동체로 부르십니다. 

 

공동체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곳은 성전과 식당입니다. 하여 저는 수도공동체의 중심을 둘이라 합니다. 함께 기도하는 성전과 함께 식사하는 식당입니다. 하여 분도 규칙서에 보면 큰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잠정적인 벌로 공동전례에서, 또 공동식탁에서 배제 시키도록 합니다만 지금은 거의 시행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에서 배제됨으로 공동체의 중요성을 실감시키기 위함이겠습니다. 

 

공동전례나 공동식사 불참시는 전후에 그 사정을 장상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공동전례와 공동식사가 공동체 형성에 중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마태오를 부르신 후 곧장 이어지는 공동식사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차별없이 당신 식탁 공동체에 초대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바리사이들에 대해 제자들을 대신하여 예수님 친히 명쾌하게 해명해 주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세상에 잘 들여다 보면 병자 아닌자, 죄인 아닌자 하나도 없습니다. 자비하신 주님께서 우리가 잘 나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족해서, 필요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하느님의 이름은 자비mercy이고 하느님의 언어는 연민compassion이다’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신비입니다. 성소의 신비입니다. 저는 저희 수도원 형제들을 대하면 하나하나가 ‘신의 한 수’ 같다는 깨달음에 늘 감탄하곤 합니다. 참으로 부족하지만 모두가 각자 필요한 제자리에서 서로 절묘한 보완관계를 이루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헌옷 누더기 공동체’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곧장 뉘우치고 공동체에 감사하게 됩니다.

 

“나를 따라라.”

 

한번으로 끝나는 따름이 아니라 날마다 부르심에 응답하여 새롭게 따라나서는 ‘따름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끊임없이 나태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따름의 여정은 바로 끊임없는 ‘탈출exodus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탈출하여 맑게 흐르는 강처럼 사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글에서처럼 말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날마다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여 강물 흐르듯 기도하며 걷는 습관이 참으로 몸에도 좋고 정신에도 좋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우리의 부르심에 대해 참 적절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수도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이 참으로 경청해야할 가르침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하십시오.”

 

혼자의 여정이 아니라 도반들과 ‘더불어의 여정journeying together’이기에 형제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기본입니다. 이어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부르심이 얼마나 심오한지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영예롭게도 이 ‘하나’에로 부름받은 우리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 은총에 따라 각자 성소에 충실할 때 성장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와 더불어 참 나의 실현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부름받은 공동체 형제들인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바로 혼자의 성숙이 아니라 ‘더불어’ 모두가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우리 성소의 궁극 목표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공동체에도 ‘불구하고’가 아닌 공동체 ‘때문에’, '덕분에' 온전한 참 나의 실현임을, 또 주님과 우정의 깊이와 함께가는 도반 형제들과 우정의 깊이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주님을 알고 나를 알고 형제들을 알게 됨으로 비로소 무지로부터의 해방에 자유로운 삶입니다. 하느님의 단 하나의 소원은 우리 모두의 구원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이르도록 도와 주십니다. 하여 주님의 마지막 한 말씀, 계명입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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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9.21 08:30
    사랑하는 주님, 주님 부르심으로 주님 주신 계명대로 살게 저희가 노력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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