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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15.연중 제24주일                                                           탈출32,7-11.13-14 1티모1,12-17 루카15,1-32

 

 

 

누가 ‘하느님의 사람’인가?

-기도, 감사, 자비-

 

 

 

“천국이 있다면 그 곳은 대한민국이요!
지옥이 있다면 그 곳 또한, 대한민국이다.”

 

새벽 인터넷 기사 댓글에서 읽은 글입니다. 어디 한국뿐입니까? 어디나 사람 모인 곳은 그러합니다. 참 혼란한 세상입니다. 여전히 반복되는 악순환의 역사같습니다. 똑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평가는 극과 극이니 참 판단하기가 힘듭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참 분별하기가 힘듭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특히 믿는 이들에게는 절박한 물음입니다. 내용(contents)과 이야기(story)가 있는 진실하고 성실한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 때 언제 어디나 천국입니다. 이런 삶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그 빛나는 삶의 모델이 제1독서 탈출기의 모세요, 제2독서 1티모서의 바오로요,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막연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물음인 사람만 있고 답인 하느님이 없으면 끝내 사람이 누구인지 해명되지 않습니다. 하여 하느님의 사람이라 명명할 때 분명해지는 사람입니다.

 

첫째,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도하며 사람을 사랑합니다. 오늘 탈출기는 하느님의 진노와 모세의 간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서 내려 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라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반복되는 인간 현실입니다. 삶은 타락이라 할 정도로 타락해 가는 삶도 참 많습니다. 익어갈수록 썩어가는 사과 밭의 사과들을 보며 참으로 깨어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부패인생으로 전락됨을 깨닫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소통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인 기도가 없어 하느님과의 관계가 소원해 질 때 무지로 인한 타락이요 교만입니다. 모세에게는 당신 속내를 털어놓는 하느님이요 이어지는 모세의 간청의 기도입니다. 오늘 탈출기는 기도의 사람 모세의 진면목을 잘 보여줍니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당신 자신을 걸고,---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혼신의 힘을 다한 모세의 애원의 기도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사람, 모세의 중재자로서의 기도입니다. 모세의 애원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주님께서는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십니다.

 

참으로 모세는 믿는 이들 공동체 지도자의 모범입니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공동체 성원을 사랑해야 하며 필히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둘째, 감사입니다.

오늘 제2독서의 주제는 ‘바오로의 감사’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사람, 기도의 사람의 특징은 감사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나를 몰라 무지로 인한 불평 불만이지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면 감사일뿐입니다. 새삼 감사도 발견임을 깨닫습니다. 믿음의 눈만 열리면 온통 감사로 가득한 내 삶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감사하는 삶 자체가 축복입니다. 감사할 때 기쁨이요 겸손이요 지혜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감사의 고백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구구절절 감동스런 감사의 고백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겸손은 이처럼 감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는 저절로 찬미의 기쁨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며 이웃에 대한 감사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새삼 감사-기쁨-찬미-겸손-지혜가 하나로 연결됨을 봅니다. 결국 무지에 대한 답도 감사임을 깨닫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감사의 절정은 마지막 기도에서 드러납니다.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믿는 이들의 결정적 특징은 감사입니다. 감사해야 사람입니다. 감사에서 기쁨도 샘솟습니다. 감사의 감각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가 필수입니다.

 

셋째, 자비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닮을수록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 역시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빛나는 자비의 모범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성심聖心의 자비로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오늘의 복음입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 되찾은 은전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봅니다. 잃은 양 하나를 끝까지 찾아내고야 직성이 풀리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그대로 하느님의 심정을, 예수님의 심정을 대변합니다. 회개 역시 자비에 대한 응답입니다. 오늘 복음은 루가복음의 심장과도 같습니다. 특히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복음중의 복음이요 자비의 복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아들이 회개할 수 있었던 것도 자비하신 아버지의 추억이었고, 귀가시 아버지의 자비는 남김없이 표현됩니다. 일체의 과거는 불문에 붙이시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큰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자비하신 아버지입니다. 

 

작은 아들도 우리의 모습이요 이어지는 큰 아들의 옹졸 편협한 모습도 우리의 모습입니다. 자비하신 아버지는 큰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십니다. 결국은 회개하여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으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의 큰 아들, 작은 아들은 물론 우리 모두가 모델로 삼아야 할 분은 참으로 대자대비하신 아버지를 닮아 무한히 자비로웠던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이십니다

 

누가 하느님의 사람입니까?

믿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사람이 되라 불림 받고 있습니다. 

 

1.기도의 사람입니다.

2.감사의 사람입니다.

3.자비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셋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간절히 기도할 때 회개와 더불어 무지에서 벗어나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3.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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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9.15 08:28
    사랑하는 주님, 저희에게 매일주시는 말씀으로 주님께 감사와 기도를
    통해 주님의 자비를 배워
    주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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