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7.주님 부활 대축일                                               사도10,34ㄱ.37ㄴ-43 콜로3,1-4 요한20,1-9

 

 

 

파스카의 예수 그리스도님

-“사랑하라, 선포하라, 추구하라”-

 

 

 

오늘은 예수 부활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교 최대의 축제입니다. 때마침 온누리에 만개한 파스카의 봄꽃들 역시 우리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달빛 은은한 밤에 농장 배밭 활짝 핀 배꽃들이 환상적이라 날짜를 보니 엊그제가 보름이었고 문득 고려시대 이조년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난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고려말 충신 이조년이 유배시 일편단심(一片丹心) 왕을 그리며 쓴 시가 흡사 사랑하는 주님의 부활을 그리는 마음과 일맥상통합니다. 마침내 우리가 오매불망(寤寐不忘) 기다리던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파스카의 봄꽃들이 늘 새롭듯이 주님 부활 축일도 늘 새롭습니다. 방금 강론전 화답송 후렴 시편과 부속가와 알렐루야는 얼마나 흥겨웠는지요! 일부 그대로 인용합니다.

 

“이날이 주께서 마련하신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주님께 감사하라 그좋으신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사랑이여”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부활 축일입니다. 얼마나 흥겨운지요! 오늘만이 아니라 날마다 이 시편 성구 짧은 노래 기도로 바치시면 좋겠습니다. 이어지는 샘솟는 기쁨에 힘을 주는 부속가 끝부분입니다.

 

“그리스도 죽은이들 가운데서 정녕 부활하심을 우리는 아노니 승리자 임금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그리스도 우리의 파스카로 희생되셨도다.”

 

어제는 4.16 세월호 참사 8주기 였고, 오늘 4월17일 대축일에 희생된 312명 모든 분이 주님의 자비로 주님과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습니다. 당시 사건일은 성주간 수요일이었고 당해 부활 대축일은 얼마나 착잡한 느낌이었던지요!  아직도 미진한 부분은 언젠가 반드시 해명되리라 믿습니다.

 

주님 부활하심이 우리에게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파스카의 주님이 계시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사실 이런 주님이 계시지 않다면 이 어둡고 험한 광야세상 무슨 기쁨, 무슨 재미, 무슨 맛으로 살아갈 수 있을런지요? 저절로 나오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희 사랑, 저희 생명, 저희 기쁨, 저희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그러니 참 좋은 주님 부활 대축일,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겠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요,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우리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신 파스카 예수님이십니다.

 

첫째, “사랑하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과 만남의 은총이고 나머지 이웃에 대한 아가페 이타적 순수한 사랑은 저절로 뒤따라 옵니다. 참으로 자유롭게 하고 생명을 주는, 집착없는 초연한 아가페 순수한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참으로 주님을 사랑했던 제자들이 빈무덤을 찾았고 사랑의 으뜸 애제자는 수제자 베드로에 앞서 달렸고, 겸손한 사랑의 애제자는 수제자 베드로에 이어 빈무덤으로 들어섰고, 전광석화, 빈무덤을 보는 순간 사랑의 눈이 활짝 열려 주님 부활을 직감적으로 믿었습니다. 짦은 말마디가 인상적입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다음 이어지는 말마디도 의미심장합니다. 사랑은 기억입니다. 언젠가 갑자가 눈이 열려 부활하신 주님을 뵙는 것이 아니라 주님 사랑의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부단히 읽고 묵상하고 믿으며 기억할 때 믿음의 은총으로 눈이 열려 주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다음 대목이 이를 함축합니다.

 

‘사실 그들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빈무덤을 보는 순간 주님 부활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애제자는 평소 주님 사랑과 더불어 성서공부의 내공도 깊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둘째, “선포하라!”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파스카의 주님을 만났다면, 체험했다면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저절로 활짝 개방하여 나누고 싶은 것이, 선포하고 증언하고 싶은 것이 영적 본능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예전의 비겁했고 겁많던 베드로가 아닙니다. 저리도 용감하고 적극적인 주님 부활 선포의 증인이 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새삼 가장 좋은 복음 선포는 주님 부활을 체험한 직제자들처럼 내 자신이 파스카 예수님과 하나되어 사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베드로의 힘찬 증언입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그분은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1.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2.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 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난 자들의 우선적 책무는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증인으로 증언의 삶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새삼 관상과 활동의 선포는 하나임을 깨닫습니다. 참된 주님의 관상가는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며 선포하는 증인의 삶에 충실한 활동가임을 깨닫습니다. 안으로는 관상의 마리아, 밖으로는 활동의 마르타로 주님 부활을 선포하며 증언하는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셋째, “추구하라!”입니다.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을, 하늘 나라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천상 비전이자 꿈이자 희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관상과 활동에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됩니다. 

 

제2독서 콜로새서에서 바오로의 확신에 넘치는 우렁한 말씀이 우리에게는 샘솟는 힘이 됩니다.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새 생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아, 바로 여기가 우리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천상 비전이요 돌아가야 할 궁극의 거처 본향집입니다. 그러니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깨달아야 참으로 사는 진짜 삶입니다. 땅에 있는 것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집착하지 말고 초연하라는 것입니다. 천상의 것들에 마음을 둘 때 저절로 집착없는 초연한 삶입니다. 그러니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도 이런 천상적 이탈의 체험임을 깨닫습니다. 천상맛을 체험해야 저절로 세상맛으로부터의 이탈이기 때문입니다. 참 좋아하는 시편 성구가 생각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복되다. 그 님께 몸을 숨기는 사람이여!”(시편34,9)

 

주님 맛을, 진리 맛을, 천상 맛을 맛들일 때 저절로 세상맛으로의 이탈이요, 비로소 무지로 부터의 해방에 자유로운 삶입니다. 다음 말씀이 참 신선한 충격입니다. 우리에게 무궁한 영감과 내적힘의 원천이 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아, 바로 이것이 우리의 궁극의 희망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니요! 놀라운 말씀이요 구원의 말씀이요 참으로 오묘한 영적 진리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될수록 참나의 실현이자 완성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주님과의 일치를 날로 깊이해 주는 주님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의 “예닮의 여정”에 우리 모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바로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의 간곡한 당부 말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을 선포하십시오.

천상의 주님을 추구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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