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9.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이사48,17-19 마태11,16-19



말씀의 수행자修行者

-‘평화가 강물처럼,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어제 병원에 다녀 오면서 병원에 가는 것, 치료를 받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등 일상의 모두가 수행임을 깨달았습니다. 자체가 수행修行입니다. 수행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배워 체화體化해야 하는 수행입니다. 겸손의 수행, 비움의 수행입니다. 참사람이 되는 수행입니다. ‘사람은 많은데 사람은 없다.’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는 말도 종종 듣습니다. 참사람이 되는 수행보다 더 중요한 수행도 없고 참사람이 되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공부도 없습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배움의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사람이 됩니다. 하여 무엇이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는 말도 있습니다. 참 반듯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하여 제 좋아하는 말마디가 수행자입니다. 사람은 종교의 유무를 떠나 모두가 수행자입니다.


진정 하느님의 수행자는 선인善人입니다. 진인眞人입니다. 현인賢人입니다. 착하고 참되고 슬기로운 하느님의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믿는 이들의 유일한 삶의 목표입니다. 수행자의 본연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단지 귀로 듣는 것뿐 아니라 수용受容하고 이해理解하여 실행實行함으로 말씀과 동화同化되어야 비로소 진짜 수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 전 말씀입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11,15).


들어야 소통입니다. 부단히 들어야 자신을 압니다. 듣지 않아 듣지 못해 불통입니다. 소통은 생명이요 불통은 죽음입니다. 붙통에서 파생되는 온갖 문제들입니다. 분도규칙도 ‘아들아, 들어라.’로 시작됩니다. 잘 듣기 위한 침묵이요 잘 들어야 순종이요 겸손입니다. 


진정 '마음의 귀'로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이가 진인이요 선인이요 현인입니다. 막연한 수행자가 아니라 ‘말씀의 수행자’가 진정한 수행자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예수님이말로 참 수행자의 모델입니다. 오늘 복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세대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는다.”


듣지 못하는, 반응할 모르고 공감할 줄 모르는 회개를 요하는 불통의 세대를 뜻합니다. 무감각, 무의욕, 무의미의 삶의 늪에 빠져있는 사람들입니다. 제대로 볼 줄도 생각할 줄도 모르는, 참으로 무뎌지고 굳어진 생각이 없는 사람, 관념이 없는 사람, 주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요한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단정하고, 예수님이 먹고 마시자.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죄인의 친구다.’ 하며 일방적으로 매도합니다. 들을 수 있는 귀는 물론 볼 수 있는 눈도 없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때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물론 무수한 성인들의 삶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참 수행자의 삶이 바로 지혜로운 삶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그 안타까움을 토로하시며 진정 당신의 계명을 듣고 실행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꼭 오늘의 우리 세대에 주는 엄중한 예언 말씀 같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스승이자 인도자이신 주님을 잊었기에 불의不義와 불화不和가 만연된 정의正義와 평화平和가 없는 세상입니다. 혼인율, 출산율의 저하와 이혼율 증가로 후손들이 끊어질 것 같은 예감도 듭니다. 어제 어느 노 자매의 ‘오늘날 성당에는 젊은이도 아이들도 없고 온통 노인들뿐’이라는 탄식어린 말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정말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들의 이름도, 하느님의 이름과 말씀도 끊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수행의 삶을 축복하시어 우리의 평화가 강물처럼, 우리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리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여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시편1,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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