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18.연중 제24주간 금요일                                                      1코린15,12-20 루카8,1-3

 

 

 

더불어 여정 중의 공동체

-중심(믿음), 비전(희망), 역할(사랑)-

 

 

 

아들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어느 형제의 말이 생각납니다. 

“저희 가족은 저녁9시에는 한자리에 모여 가족 기도를 바칩니다. 모두가 이 시간에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이 불문율이 되었습니다.”

어제 소개했던 자매의 카톡 메시지를 다시 나눕니다.

“모두가 마음들이 아파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간극이 생겨 분열되고 하는 상황인데 우리 가정 식구 모두가 무탈하게 세끼 식사하며 가정 기도를 매일 같이 할 수 있으니 너무 감사한 거예요.”

 

새삼 믿는 이들의 가정 공동체 생활에 함께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예전 사막과 같은 미국 뉴튼 수도원에서 생활할 때 공동체 삶에 함께 기도와 함께 식사의 두 요소가 공동체 형성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달았습니다. 서로 확인하며 구체적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기도를 통해서는 영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임을, 함께 식사를 통해서는 육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임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공동체 형성에 함께 기도와 함께 식사는 필수 요소입니다. 하여 수도공동체 일과표도 아침미사후에 아침식사, 낮기도 후에 점심식사, 저녁기도후에 저녁식사가 하루 중심 기둥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먹고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고 먹습니다. 하여 하느님 중심에 질서있는 수도공동체 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새벽 인터넷 뉴스중 정은경 질병청장의 참으로 적절하고 지혜로운 조언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당분간은 코로나 종식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코로나19와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는 일상, 그리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정착시키고 생활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함께’의 원리가 중요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이상적인 유토피아 공동체는 없습니다. 공동체 삶이나 개인의 삶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공동체 현실을 인정하며 서로의 불편이나 질병도 손님처럼 잘 관리하며 함께 지내는 지혜와 사랑, 인내가 중요합니다. 

 

더불어 여정 중의 공동체요 바로 오늘 강론의 제목입니다. 오늘 짧은 복음을 보면서 순간 깨달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고독한 은수자가 아니었습니다. 외딴곳에서의 홀로의 기도 시간을 제외하곤 늘 공동체와 함께 했습니다. 홀로와 함께가 잘 조화된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저는 공동체 형성의 세요소에 주목합니다.

 

첫째, 중심입니다.

중심은 믿음을 뜻합니다. 함께 모였다고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님 중심이 있어 공동체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뤄 살 수 있는 것도 바라보는 주님 중심이 같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부부일치의 공동체를 봐도 주님 중심의 믿음의 삶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을 봐도 예수님이 바로 제자들 공동체의 중심임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여 주님 중심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끊임없이 바치는 공동전례 기도입니다. 우리 공동체 삶의 중심은 죽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이십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가 제1독서에서 열정적으로 선포하는 주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 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나셨고,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바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은 우리들의 믿음의 기초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공동체의 중심이신 주님을 사랑할 때 저절로 이타적인 아가페 형제 사랑이요, 서로간의 질서와 거리도 유지되고 홀로와 함께의 균형과 조화도 이뤄집니다. 

 

둘째, 비전입니다.

비전은 희망을 뜻합니다. 공동체의 공동 비전이, 희망이 있어야 공동체의 건설입니다. 개인은 물론 공동체도 비전이, 희망이, 꿈이 있어야 합니다. 작금의 공동체나 개인의 위기는 바로 이런 비전을, 희망을, 꿈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궁극의 비전은, 희망은, 꿈은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 제자들의 공동체가 답을 줍니다.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물론 제자들의 평생비전이자 희망이자 꿈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이런 꿈이 희망이 비전이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고 깨어 살게 합니다. 이런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꿈을, 희망을 새롭게 선포하고 살고자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 기도입니다. 더불어 하느님 나라 공동체의 실현이니 꿈의 현실화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이 개인이나 공동체 삶의 꼴을 잡아주는 것이 이런 궁극의 하느님 나라의 비전이자 꿈이자 희망입니다. 이런 꿈을, 희망을, 비전을 잃어 버릴 때 사람은 거칠어 지고 사나워집니다. 무지와 탐욕, 나태의 어둠 속에 추락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공간 개념이 아니라 관계 개념입니다. 파스카의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그러니 공동체의 중심이자 비전이자 희망이신 파스카의 주님과의 우정이 깊어지면서 우리 하나하나가,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 됩니다. 하느님 나라의 빛나는 표지가 된 개인이나 공동체가 될 때 저절로 이뤄지는 복음 선포입니다.

 

셋째, 역할입니다.

역할은 사랑을 뜻합니다.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한몸 공동체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중심이자 비전인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할 때 지체인 공동체의 형제들도 사랑하게 되고 각자의 역할도 존중하고 배려하게 됩니다.

 

참 중요한 것이 각자가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몫의 역할을 다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양성의 일치이며 공동체 삶의 풍요로움입니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는 섬김의 배움터입니다. 각자 고유의 제몫의 섬김의 직분에 충실할 때 참 아름답고 튼튼한 공동체의 성장이요 성숙입니다. 제가 이렇게 매일 강론에 충실할 수 있는 것도 순전히 공동체 덕분입니다. 공동체 형제들이 각자 제몫의 섬김의 소임에, 역할에 충실하기에 이렇게 마음 집중하여 강론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제자들의 공동체를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의 하느님 나라의 복음 선포 역할을 가능하게 해주는, 숨겨진 배경을 이루는 것이 자매들입니다. 공동체는 이상이자 현실입니다. 하느님 이상에 돈의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하지 않습니까? 자매들의 시중이 없으면 하느님 나라의 선포 큰 차질을 빚을 수 뿐이 없습니다. 

 

여전히 오늘날도 입증되는 진리입니다. 열심한 자매들의 한결같은 봉헌과 봉사활동이 없다면 교회 공동체도 곧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더불어 여정중의 공동체입니다. 각자도생이 아닌 상호협력의 공동체입니다. 비교나 경쟁의 대상이 아닌 상호보완의 공동체 형제들입니다. 

 

주님 중심에 대한 믿음, 하느님 나라의 비전에 대한 희망, 제 몫의 역할에 충실한 섬김의 사랑 셋은 공동체 성장과 성숙에 필수적 요소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런 신망애信望愛 공동체의 성장과 성숙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시편17,1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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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0.09.18 08:12
    "주님 중심에 대한 믿음, 하느님 나라의 비전에 대한 희망, 제 몫의 역할에 충실한 섬김의 사랑 셋은 공동체 성장과 성숙에 필수적 요소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런 신망애信望愛 공동체의 성장과 성숙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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