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23.목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49,1-6 사도13,22-26 루카1,57-66.80

 

 

 

아름다운 인생 숲길을 걸읍시다

-사명, 우정, 떠남-

 

 

 

“Life is beautiful(인생은 아름다워라)”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당시 강론에 인용했던 이 영어 말마디입니다. 세수를 하려 플라스틱 대야를 보던 순간 투명한 물을 통해 바닥에 씌어져 있던 이 영어 말마디를 봤을 때 참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그날까지 힘차게, 하루하루, 행복하게,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건 믿는 이들의 마땅한 의무요 책임이요 권리입니다. 수도원 입구에서 수도원 주자창까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나무 울창한 ‘하늘길’을 걸을 때마다 아름다운 인생 숲길을 걷듯 그렇게 걷습니다.

 

어떻게 아름다운 인생의 숲길을 걷듯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사명, 아름다운 우정, 아름다운 떠남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오늘 탄생 대축일을 지내는 성 요한 세례자입니다. 예수님을 빼놓고 탄생 대축일을 지내는 분은 아마 성 요한 세례자 한 분 뿐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적 절친切親 성 요한 세례자에 대한 너무 당연한 예우禮遇이겠습니다.

 

참 아름다운 사람, 성 요한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의 주님과의 관계에서 사명을 다한 삶이, 주님과의 영적우정이, 또 자기 사명을 다했을 때 겸손히 사라지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바로 이점을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 사도행전 마지막 절에서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참 멋진 사나이, 아름다운 사나이, 행복한 사나이, 겸손한 사나이 성 요한 세례자 요한입니다. 자기의 신원을, 자기의 사명을 주님과의 관계에서 너무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요한 세례자입니다. 이제 사명을 다하자 그 자리에서 물러나 조용히 퇴장하는 참 아름다운 떠남의 사람, 성 요한 세례자 요한입니다. 떠오르는 태양에 소리없이 사라지는 달같습니다. 떠날 때 잘 떠나는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도 없습니다. 

 

사실 사명을 다하고 직위에서 떠나는 모습도 아름다운 선물이지만, 특히 마지막 아름다운 죽음의 떠남보다 더 좋은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성인들이 그 좋은 모범이요 제 주변에도 길이 그윽한 향기를 남기고 떠난, 지금도 제 마음속에 살아 있는 아름다운 분들도 많습니다.

 

누구나 마음 깊이에는 참으로 살고 싶은 영적 갈망이 있습니다. 성 요한 세례자가 좋은 가르침을, 깨우침을 줍니다. 우선 우리의 사명에 대한 자각이요 이를 날로 깊이하는 것이며,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자 도반인 예수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 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에 충실하고 항구할 수 있습니다.

 

유다인 랍비 신비주의자 여호수아 헷쉘의 가르침이 고맙습니다. 합리주의 철학자 데칼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 언명합니다만, 여호수아 헷쉘은 달랐습니다. “나는 불림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무명의 존재감 없는 삶에서 주님께 불림받아 비로소 존재감 충만한 참나의 삶을 살게 됐다는 고백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내가 주님께 불림받지 않았다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무지와 허무속에서 존재감 없는 무명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인을 물론이요 우리 믿는 이들에게서 주님을 빼면 완전 제로, 무의미와 허무의 존재로 드러날 것입니다. 정말 ‘신의 한 수’와 같은 우리 성소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다음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에서 예수님은 물론 요한 세례자, 그리고 무수한 성인들이 자신의 신원과 사명을 늘 새롭게 자각하고 확인했습니다. 이 또한 우리의 신원이요 사명임을 믿고 새롭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우리 각자는 우연적 존재가 아닌 불림받은 섭리의 존재임을 깊이 각인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보라,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바로 이 은혜로운 말씀이 예수님과 성 요한 세례자는 물론 우리의 신원과 사명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이런면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예수님이요 또 하나의 성 요한 세례자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성 요한 세례자 탄생 이야기에서도 참으로 불림받은 그의 모습이 작명作名과정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많은 이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부르려하지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며 완곡하게 반대했고, 이어 즈카르야도 글 쓰는 판을 달라하여 “그이 이름은 요한”이라고 화답하여 쓰니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바로 하느님 친히 작명하신 ‘주님의 은혜’라는 뜻의 요한 이름입니다. 여기서 즈카르야가 부른 찬미가는 우리가 날마다 아침성무일도 끝무렵에 바치는 ‘즈카르야의 노래’입니다. 이어지는 그 지방 사람들의 반응과 성장과정을 보면 정말 불림받은 ‘신의 한 수’ 같은 성 요한 세례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도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위의 묘사에서 보다시피 새삼 요한 세례자는 결코 우연한 인물이 아니라 섭리의 인물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또한 요한 세례자처럼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불림받은 존재임을 마음 깊이 각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충일한 사명감과 주님과의 깊은 우정이란 성소의 관점에서 보면 어제 복음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제가 어제 복음 독서를 하고 강론을 하면서 잊고 언급해지 못했던 아차했던 첫 구절입니다.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든 이리들이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듯 행동을 보면 사람을 압니다. 참으로 주님께 부름받은 제 신원을, 제 사명을 모를 때, 잊었을 때 무수한 가면들이요, 거짓 위장의 옷차림입니다. 사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보호본능상, 방어본능상 가면을 쓰고 속과 겉이 다르게 위선적 삶을 살아갑니다. 

 

이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제 신원과 사명에 대한 자각입니다. 제 신원을, 제 사명을 깨달아 살아갈 때 마음은 저절로 통합되고(intergrity) 투명하고(transparency) 순수해져 가면은 저절로 사라져 어디서나 본모습, 본얼굴로 자연스럽게, 자유스럽게 살아갑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매력을 발산하여 많은 사람들을 끌어드려 주님께 인도하니 바로 성인들이 그러합니다. 어제 읽은 영어 주석을 잊지 못합니다.

 

“속을 돌보라, 그러면 겉은 스스로 돌볼 것이다(Take care of the inside and the outside will take of itself)”

 

안이 깨끗하면 겉은 저절로 깨끗해 질 것이니 가면이나 위장을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존재자체로부터 배어나오는 아름다움이, 향기가 속과 안을 같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외부의 관리보다는 마음 관리가 얼마나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속은 그대로 놔두고 아무리 화장하고 성형하고 가면쓰고 위장해도 속은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아름다운 사명, 아름다운 우정, 아름다운 떠남에 충실함이 제일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성 요한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주신 사명에, 당신과의 우정에 충실하므로, 아름다운 인생 숲길을 산책하듯 그렇게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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