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30.금요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집회3,2-6.12-14 마태2,13-15.19-23
순례 항해航海 여정중의 성가정 공동체
-가장의 리더십-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시편128,1).
지난 12월28일 수요일 일반 알현 시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95세 베네딕도 16세 전임 교황을 위한 특별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을 위한 특별기도를 요청합니다. 그분은 침묵중에 교회를 떠받쳐 준 분입니다. 그분은 지금 매우 아픕니다. 그분을 기억하며 주님께 그분을 위로해 주십사, 또 끝까지 교회를 위한 그분의 사랑의 증거가 지속되게 해 주십사 주님께 청해 주십시오.”
오늘 성가정 축일 미사중 화답송 후렴이 참 흥겹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자 얼마나 행복되리”
오늘 하루 내내 화살기도 노래로 바치며 행복한 성가정 축일을 지내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 참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성가정 요셉 수도 공동체에 몸담고 살고 있음이 참 감사합니다.
아마 이렇게 하느님 중심의 성가정 공동체를 이뤄 사는 12명 대가족의 공동체도 드물 것입니다. 그대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공동체’를 모델로 삼아 살아가는 순례 항해 여정중의 우리 성가정 요셉 수도공동체입니다. 세상이 흡사 순례 항해 중인 바다 같다는 생각에 강론 제목을 “순례 항해 여정중의 성가정 공동체”라 정했습니다.
잠시 성가정 축일의 유래에 대해 살펴 보고자합니다. 교회는 참으로 시의적절하게도 나자렛 성가정을 특별히 기억하고 그 모범을 본받도록 성가정 축일을 제정했습니다. 성가정에 대한 신심이 교회내에서 확산된 것은 지난 17세기 무렵으로,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공경이 캐나다 퀘벡의 초대 주교 라발(1623-1708)에 의해 캐나다로 확산되면서 특별 미사가 봉헌되고 기도문이 제정됩니다.
이어 ‘성가회’, ‘성가정 선교 수도회’, ‘성가정 자매회’, ‘베르가모의 성가정 수녀회’등 성가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도공동체들이 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1893년에는 교황 레오 13세가 모든 가정을 성가정에 봉헌했고, 1921년 10월 26일에는 교황 베네딕도 15세가 이 축일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모든 교회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도록 합니다. 마침내 1969년 전례력 개정으로 성가정 축일은 성탄 팔일 축제내의 주일, 즉 예수성탄 대축일 다음의 첫째 주일이지만, 이번처럼 주일이 없으면 12월 30일에 지냅니다.
보금자리 가정 공동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하고 어두워도 반듯한 부모들이 건재하는 한, 자녀들은 잘 양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가정생활의 체험은 평생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저도 초등학교 어렸을 때 귀가하면 우선 찾는 것이 어머니였습니다. 특히 가장의 리더십이 빈약할 때 어머니의 역할은 참으로 결정적입니다.
훌륭한 인물들의 배경에는 십중팔구 현모양처의 어머니들이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가끔 되뇌이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은 아무나 하나?”, “부모는 아무나 되나?” 때로는 부부자격시험. 부모자격시험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임감은 물론 준비가 참으로 부족한 이들이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됨으로 불행을 겪고 있는 자녀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따뜻한 보금자리 품의 가정 공동체 찾아 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대부분 결손 가정들입니다. 힘들고 거친 광야 세상에 성가정 공동체를 이뤄가는 가정의 부부들을 보면 저절로 감동하고 고마운 생각까지 듭니다. 문제가 없는 순탄대로의 성가정이 아니라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다하는 부모들이 있어 성가정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힘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며 가정을 이끌어가는 부모들을 보면, 저는 무조건 성인들이라고 격찬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 가정을 잘 이끌어 간다는 것은 거의 순교적 희생심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순례 항해 여정중 파선이나 조난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지요! 어제 읽은 기사가 우리 나라에서 얼마나 성가정을 이뤄 살기 어려운지 잘 밝혀 줍니다.
“세계화-신자유주의는 다른 어느 곳보다 한국에서 훨씬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추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한국처럼 비정규직이 많고(전체 노동자의 37.5%), 66살 이상 노인이 빈곤에 시달리는(노인 상대적 빈곤 40.4%) 나라는 없다. 하도급 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들의 상대적 값싼 노동을 이용하는 한국형 이원적 수출경제 구조는 일면으로 대기업들의 세계적 도약을 가능하게 했지만, 다른 일면으로는 최악의 양극화를 낳았다.
구미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학습경쟁과 경제적 압력 속에서 살아나가야 하는 세계화 시대 말기의 젊은 한국인들은, 아예 ‘가족’ 형태로 결합해 재생산할 여력 자체를 잃고 말았다. 주민등록 세대중 1인 가구 비율이 40%를 넘고,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0.79명으로 떨어진 대한민국은, 가면 갈수록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경쟁 속에서 스스로의 생존만 도모하느라 여념없는 원자화된 개인들의 나라가 됐다. 선진국 반열에 들었섰다지만, 행복지수가 선진권의 ‘꼴찌’에 가깝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2022.12.29. 한겨레, 박노자)
너무나 적나라한 비판이지만 사실입니다. 이런 와중에 성가정을 이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지 정말 눈물겹습니다. 혼기를 놓친 30대에서 50대까지 남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설상 결혼했다 해도 이혼은 날로 늘어나고 위태한 가정들 역시 얼마나 많은지요.
제 70년대 교사시절 6학년때 지금은 50대 후반의 제자들, 이때만해도 결혼 못한 이들은 몇 명의 소수였지만 지금의 30-40대는 결혼 못한 이들이 대다수입니다. 결혼한다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 같습니다. 새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아 내 몸담고 있는 가정의 성가정 공동체 건설을 위해 주님의 형제이자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 전의와 각오를 새로이 해야 절박한 시대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서 순례 항해 여정중인 성가정 공동체를 묵상했습니다. 헤로데 임금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갔다가 다시 귀환하게 되는 참 파란만장한 순례 여정중 가장인 요셉의 리더십이 빛납니다. 참으로 주님의 인도따라 순례 여정에 충실했던 기도와 믿음, 지혜와 순종의 사람, 참으로 가장으로서 끝까지 인내하며 책임을 다했던 성가정의 가장 요셉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흡사 요셉의 수호천사처럼 생각됩니다. 세상에 아무리 어려운 가정이라 해도 오늘 복음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상황보다 힘든 가정은 없을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습니다. 또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참으로 가장이 리더십이 부족해도 어머니들이 그 책임을 다할 때 하느님은 기꺼이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십니다. 참으로 파선 직전의 가정들이 성녀같은 어머니들 덕분에 성공적 순례 항해 여정중인 성가정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제1독서 집회서는 성가정 생활중 구체적 지침을 줍니다. 사실 노부모들 잘 모시는 가정 치고 잘못되는 가정 본 적이 없습니다. 자녀들은 어김없이 부모들을 보고 배웁니다. 믿음, 사랑, 희망, 기도, 효도등 보고 배우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야, 네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분들이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날로 늘어나는 노인들에 또 치매환자들도, 본의 아니게 가정을 떠나 요양원 신세를 지는 노인들도 많습니다. 성가정의 개념이 확대되야 함을 봅니다. 혈연血緣 가정을 넘어 명실공히 예수, 마리아, 요셉의 신연神緣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빛나는 모범이 우리 교회공동체, 요셉 수도공동체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
참으로 진짜 성가정 공동체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맏형으로 모신 말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요 여기에 속한 세상의 성가정들입니다.
우리 성가정 요셉 수도공동체에 잠시 손님으로 머무는 이들, 또 수도원 가까이 살면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하는 분들 역시 넓은 의미로 성가정 요셉 수도공동체의 일원이란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넓고 깊고 따뜻한 정주定住 수도 가정 공동체에 걸맞는 환대歡待의 영성입니다.
1인 가구가 날로 늘어나는 외롭고 쓸쓸한 시절에, 교회의 성가정 공동체 역할은 날로 커질 수 뿐이 없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가정 교회 공동체에 속한 한 식구 형제자매들로 만들어 줍니다.
“주님, 당신 성가정의 모범으로 우리를 비추어 주시고,
우리의 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