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0.연중 제10주간 월요일                                                             1열왕17,1-6 마태5,1-12

 

 

참행복의 제자리

<믿음의 뿌리>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늘나라다”

 

 

“산들을 우러러 눈을 드노라.

 어데서 구원이 올런고?

 구원은 오리라 주님한테서, 

 하늘땅 만드신 그 님한테서.”(시편121,1-2)

 

어제 친지로부터 받은 짧막한 카톡 글귀를 잊지 못합니다. 유명한 귀천 시를 지은 천상병 시인에게 그 어머니가 한 말이라 합니다. 

 

“얘야, 뭘 그리 골돌히 생각하니?

 그냥 살어, 그냥

 별것 없다, 별것 없어”

 

제가 32년전 왜관 본원의 장엘마르 원장님을 찾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물었을 때 빙그레 웃으며 하신 말씀에 순간 자유로워짐을 느낀 말마디가 있습니다.

 

“그냥 살면 되!”

 

어제의 순간적 체험도 잊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허의 체험이었습니다. 여기 요셉수도원에서 정주생활한지 36년인데 텅빈 하늘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뭐 보이는 것도 없고 잡히는 것도 없고, “아, 이래서 수도원 나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후 노모와 방문한 자매에게 이런 체험을 나눴을 때 즉각적인 답변도 잊지 못합니다.

 

“밖에서도 그래요. 어디나 그래요. 별것 없습니다.”

 

이래서 사막교부들은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 했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을 만나야 할 하느님 나라 꽃자리입니다. 그 어디든 뿌리 내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거기가 꽃자리 하늘 나라입니다. 제 행복기도시 일부도 생각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늘나라 천국이옵니다”

 

6월의 초목이 저리도 푸르게 빛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인 뻗은 뿌리들 덕분입니다. 하느님께 뿌리 내린, 보이지 않는 믿음의 뿌리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뿌리내리지 못하면 어디서나 표류하는 두렵고 불안한 삶의 연속일 것입니다. 천상병 시인의 절친인 구상 시인의 유명한 “꽃자리”라는 시도 기억할 것입니다. 두분 다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나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바로 참행복을 살아야 할 꽃자리는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 산상설교의 참행복 선언이 참행복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모세의 십계명을 포함하면서 그를 훨씬 뛰어넘는 참행복입니다. 누구나에게 활짝 열려있는 하늘 나라의 행복이요 끝없이 열려있는 탐구대상의 참행복입니다. 종파를 초월해 참영성, 참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영성가들이 열렬히 사랑했던 참행복입니다. 특히 인도의 성자라 일컫는 간디가 평생 참 좋아했고 살려고 노력했던 또 살았던 참행복입니다. 다음 내용을 묵상하며 내 영적상태를, 성덕수준을 진단해보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주님의 기도가 예수님의 가난하고 단순한 삶의 요약이듯 산상설교의 참행복은 예수님의 초상화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평생 추구했던 참행복이요 이 참행복의 거울에 비춰보면 우리의 영적수준은 언제나 초보자 수준에 머물고 있는 듯이 생각됩니다. 이런 참행복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진짜 신자들입니다.

 

모세의 십계명과 예수님의 참행복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십계명을 포함하나 이를 훨씬 능가하는 끝없이 열려 있는 참행복의 비결입니다. 십계명의 준수로 좋은 신자는 되겠지만 정말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참행복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길뿐입니다. 참행복의 성인들의 공통점은 하느님 배경에, 하느님께 깊이 신망애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뿌리 내리느냐에 참행복이 달려 있습니다. 보이는 세상 것들이 아닌 하느님께 깊이 뿌리 내린 참행복한 성인들입니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듯 하나 하느님께 깊이 뿌리 내린 참 부유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자들입니다. 이래서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이란 고백도 나오는 것입니다. 아주 예전 부활대축일 다음날 엠마오 산보를 떠나고 혼자 남아 있을 때 써놓고 오랫동안 위로를 받았던 “민들레꽃”이란 짧은 시편 하나도 생각납니다.

 

“민들레꽃

 외롭지 않다

 아무리 작고 낮아도

 샛노란 마음

 활짝 열어

 온통 하늘을 담고 있다”<2000.4.24>

 

외관상 가난해 보이지만 샛노란 마음 활짝 열어 온통 하늘을 담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부자도, 더 큰 자유인도, 더 큰 행복한 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눈만 열리면 어디나 뿌리내릴 꽃자리 참행복의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누가 찾아줄 수 없는 각자 하루하루 날마다 분투의 노력을 다해 평생 찾아야 할 참행복의 하늘 나라입니다. 결코 값싼 참행복의 하느님 나라는 없습니다. 말이야 “별것없다, 그냥 살어!” 평범한 말같지만 깊은 내공이 깔려있는 참행복의 하느님께 알게 모르게 깊이 뿌리 내린자의 고백입니다.

 

바로 이런 참행복의 주인공이 예수님이요 이에 앞서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의 엘리야 예언자입니다. 당신을 찾는 엘리야에 앞서 가시며 그의 필요를 채워주시니 가난한 듯 하나 참 부자, 참 행복한 자가 엘리야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시니 피신중의 그 불안한 자리도 안정과 평화의 꽃자리가 됩니다. 바로 다음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까마귀들이 그에게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 그리고 그는 시내에서 물을 마셨다.”

 

문득 논어의 <덕불고 필유인(德不孤 必有隣>,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좋은 이웃이 생긴다’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진정 하느님을 찾는 의인들 곁에는 까마귀들로 상징되는 주님의 천사같은 사람들의 도움이 늘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의 계신 곳에 엘리야가 있으니 참행복의 예언자 엘리야는 우리 믿는 이들의 롤모델이기도 합니다.

 

정말 수십년을 살았어도 언뜻 보기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텅빈허무의 외롭고 쓸쓸한 느낌’도 들겠지만, 잘 깊이 들여다 보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깊이 뿌리내린 삶에서 샘솟는 ‘텅빈충만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도 할 것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참행복의 주님을 마음 깊이 모시는 시간이자 주님께 깊이 신망애(信望愛)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5,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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