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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10. 연중 제15주일                                                             신명30,10-14 콜로1,15-20 루카10,25-37


                                                                        영원한 생명의 길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오늘 복음에서 어느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묻습니다. 질문한 의도는 불순하지만 질문 자체는 우리 모두의 근본적 갈망을 표현합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시험하려 물었다지만, 역시 율법교사의 진정성이 담긴 물음입니다. 옛 사막의 수도승을 찾았던 이들의 질문들도 이와 일치합니다. ‘스승님,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스승님, 제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 사람답게, 보람있게,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는 갈망의 표현들입니다. 


그럴 때 마다 사막의 스승들은 그에 맞는 단순명쾌한 처방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바로 사막교부들의 금언집이 바로 이런 스승과 제자의 문답내용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여전히 혼란한 삶중에 자기를 잊고, 잃고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설득력을 지닌 금과옥조의 예화들입니다. 


‘과연 한 번뿐이 없는 삶을 이렇게 살아도 되나?’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덧없는 허무한 삶이 아닌 의미충만한 ‘참 나’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근본적 갈망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여러 측면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에 대한 처방을 제시합니다. 지혜로운 스승 예수님은 직답을 피하고 율법교사 자신의 입을 통해 답을 찾아내도록 유도합니다.


1.예수님;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율법교사;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하였습니다.”

 예수님;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참 삶의 길은, 영원한 생명의 길은 경천애인敬天愛人, 사랑의 이중 계명 하나뿐입니다. 이대로 실천할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의 길이 활짝 열립니다. 말문이 막힌 율법교사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질문으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정말 귀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순전히 자기 중심적 질문입니다.


2.이웃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과연 나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의 이웃입니까? 만일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나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 이웃은 몇이나 되겠는지요? 만일 내 주변의 이웃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진정 슬퍼하여 울 이웃은 몇이나 될까요?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나를 도운 착한 사마리아인은 누구였었는지요? 반대로 이웃이 곤경에 처했을 때 내가 착한 사마리안이 되어 도운 경우는 있었는지요? 한 번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3.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는 사제, 레위인, 사마리안의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면 진정 참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은 사람은, 전혀 종교인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 하나였습니다. 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슬며시 피해 간 사제와 레위인이었지만 하느님은 보고 계십니다.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이 셋 중 누구였을까요? 셋 다 각자의 업무로 바빴겠지만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상태의 사람앞에 멈춘 것은 사마리아 사람 하나뿐이었습니다.


4.영원한 생명의 길은 무엇입니까? 저는 세 측면에 걸쳐 묵상했습니다. 이 셋대로 살 때 비로소 착한 사마리안이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참 신비로운 것이 예수님이 두 모습으로 계시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착한 사마리안이요 하나는 초주검이 된 사람입니다. 


착한 사마리안을 통해 자비로운 예수님의 모습이 환히 드러납니다. 또 역설적으로 초주검이 된 사람을 통해 고난 받는 예수님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중 하나에게 해 준 것이 예수님 당신께 한 일이라 하지 않습니까? 곤경중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이 바로 주님을 돕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곤경중에 있는 이들을 통해 우리의 도움을 청하는 주님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5.영원한 생명의 길에 이르는 첫째가 ‘지금 여기 가까이를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의 모세가 옳은 처방을 줍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계명은 너희에게 힘든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지도 않다. 또 그것은 바다 건너편에 있지도 않다. 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일체의 변명이나 핑계를 봉쇄합니다. 몰라서 실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도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이중계명 같은 말씀은 공부하지 않아도 잘 들여다 보면 우리 마음 안에 새겨져 있고 우리 입에 있습니다. 어찌 말씀뿐입니까? 모든 문제의 답은 밖에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안 가까이 있습니다. 어디나 하느님 계신 성지이니 굳이 멀리 성지 찾아 가지 않아도 됩니다.


외출한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나라고, 여기에 하느님을 놔두고 밖에서 찾는다고 신비가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말합니다. 바로 여기가 하느님 계신 하늘 나라요, 하느님께 열린 하늘 문입니다. 곤경 중에 처한 이웃을 찾아 나설 것도 없으니 바로 자비의 눈만 열리면 내 가까이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현자들의 ‘카르페 디엠!’, 지금 여기 현재를 살라는 간곡한 당부입니다.


6.영원한 생명의 길에 이르는 두 번째는 ‘영적시야를 넓히라.’는 것입니다. 자기도취, 자기만족의 우물안 개구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행의 목적도 견문을, 즉 시야를 넓히는데 있습니다.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 없다는 말도 잊혀지지습니다. 


삼면은 바다로 한면은 북한에 의해 포위된 지정학적 고립무원의 한국의 처지가 우물한 개구리식 편협한 사고를 키울 수 있습니다. 작금의 한국의 현실이 지극히 불길하고 위태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우리의 처지를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사제와 레위인은 그 영적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계율이나 율법은 충실히 지켰을지 몰라도 정작 하느님의 원하시는바를 몰랐습니다. 이런저런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으로 차단된 시야입니다. 바로 종교인들의 취약점입니다. 한 마디로 사랑이 빠졌습니다. 


반면 사마리아인의 영적 시야는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이데오르기, 편견, 종교관념 등 시야를 차단하는 모든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 현실을 보는 자비의 눈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시야요 수도생활을 통해 성취되어야할 경지입니다. 살아갈수록 너그러워지고 자비로워짐으로 드넓은 내적시야를 지닌 사람이 진정 영성가입니다. 


토마스 머튼에 대한 평이 생각납니다. ‘그는 가톨릭이전에 그리스도교인이었고, 그리스도교 이전에 종교인이었고, 종교인 이전에 사람이었다.’ 그는 ‘관상가-경계인-보편인’의 발전경로를 말하여 궁극엔 좌우사방 내적시야가 활짝 열린 보편인을 최고의 경지로 칩니다. 바로 토마스 머튼 자신이 이 경지에 이르렀던 분입니다. 


오늘 콜로새서의 그리스도 찬가가 우리의 내적시야를 한없이 넓혀 줍니다. 얼마나 웅장한 우주적 그리스도를 노래하는 지요.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향하여 창조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하여 그리스도로 수렴되는 우주 만물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우주만물의 중심이자 의미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그리스도가 자랑스럽게도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세계로, 우주만물로 활짝 열린 교회의 시야는 그대로 하느님의 시야입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화해시키셨습니다.’


바로 이를 실감케 하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하여 우리의 영적시야를 넓혀주는 미사 은총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때 우리의 편협한 시야는 하느님의 시야를 닮아 날로 넓어질 것입니다.


7.영원한 생명의 길에 이르는 셋째는 ‘연민의 사람,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가엾이 여기는 자비로운 연민의 마음은 값싼 동정이 아니라 함께 공감하고 동참하는 마음, 실행에 옮기는 마음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초주검이 된 사람을 지극 정성 간호하는 사마리아 사람의 마지막 부분의 묘사는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감동적인 사마리아인의 예를 드신 후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율법 교사에게 묻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가 강도를 만나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내 이웃이 누구인가’ 물을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 줄것인가’ 물으라는 것입니다. 곤경중에 있는 이들의 이웃이 되어 주라는 것입니다. 내 중심이 아니라 곤경중에 있는 이웃 중심이 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1.멀리 밖에서가 아닌 지금 여기 가까이를 보십시오.

2.내적시야를 부단히 넓히십시오.

3.곤경중에 있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이웃이 되십시오.


바로 이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복음의 착한 사마리안처럼 갖가지 모습으로 곤경중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구원을 베풀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가10,37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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